[기묘한 큐티]

[기묘한 큐티] 근본 하나님이시지만 종의 형체를 입은 분 빌2:6-11

Jesus at the tomb
Vladimir Borovikovsky 18세기작

[빌2:6-11]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전통적인 용어로 이 문제는 예수 안에서 신과 인간의 “본성”의 관계로서 논의되어 왔다.
인성(인간의 본성)이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그리스도가 존재 조건에 완전히 참여하는 것을 박탈한다. 신성(신성한 본성)이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인성과 신성의 실존적 구분에서 신성이 완전히 승리하는 것을 박탈한다. 두 경우 모두 그가 새로운 존재일 수 없고, 그보다 하등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의 인간 안에서의 연합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느냐가 문제였다. 역사적으로 이 문제는 제대로 해결된 적이 없다. 심지어 인간 가능성의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해결된 적이 없다. 두 본성 교리는 올바른 문제를 제기하지만 잘못된 개념을 사용한다. ‘본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본성을 인간에게 적용하면 의미가 모호하고, 본성을 신에게 적용하는 것은 오용이다. 공의회(예;니케아 공의회와 칼케돈 공의회)의 실체적 진실과 역사적 의의는 인정하지만, 이러한 공의회는 피할 수 없이 결정적인 실패였다. – 틸리히, 조직신학, 142

In traditional terms the problem has been discussed as the relation of the divine to the human “nature” in Jesus. Any diminution of the human nature would deprive the Christ of his total participation in the conditions of existence. And any diminution of the divine nature would deprive the Christ of his total victory over existential estrangement. In both cases he could not have created the New Being. His being would have been less than the New Being. Therefore, the problem was how to think the unity of a completely human with a completely divine nature. This problem never has been solved adequately, even within the limits of human possibilities. The doctrine of the two natures in the Christ raises the right question but uses wrong conceptual tools. The basic inadequacy lies in the term “nature.” When applied to man, it is ambiguous; when applied to God, it is wrong. This explains the inescapable definitive failure of the councils, e.g., of nicaea and Chalcedon, in spite of their substantial truth and their historical significance. – Tillich, Systematic Theology, 142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더 건전한 이해의 시작이며 더 설득력 있는 신학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여 우리를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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