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큐티]

[기묘한 큐티] 신앙과 신학은 언제나 잠정적 고후13:5

Abraham Receiving the Three Angels
Bartolome Exteban Murillo 1667

고후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지식을 받는 것(계시)은 아는 것과 알려진 것의 창조적 결합에 의해 검증됩니다. 물론 이 검증은 반복 가능하거나 정확하거나 어느 순간 최종으로 결론나지 않습니다. 삶의 과정 자체가 검증과정입니다. 그러므로 검증은 기한이 없고 잠정적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위험하기도 합니다. 나빠 보이는 것이 나중에 사실은 좋은 것으로 판명될 때가 있고 그 반대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고 지식을 습득해야 하며, 검증가능 여부와 관계 없이 경험적 검증을 계속해야 합니다. – 폴 틸리히, 조직신학, 103

Receiving knowledge is verified by the creative union of two natures, that of knowing and that of the known. This test, of course, is neither repeatable, precise, nor final at any particular moment. The life-process itself makes the test. Therefore, the test is indefinite and preliminary; there is an element of risk connected with it. Future stages of the same life-process may prove that what seemed to be a bad risk was a good one and vice versa. Nevertheless, the risk must be taken, receiving knowledge must be applied, experiential verification must go on continually, whether it is supported by experimental tests or not. – Paul Tillich, Systematic Theology, 103

신앙과 신앙에 대한 앎은 언제나 다시 돌아봐야 하는 줄 압니다. 저의 앎은 언제나 한정적이고, 그러므로 언제나 잠정적입니다. 삶 전체를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삼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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