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큐티]

[기묘한 큐티] 내 자리를 벗어나야 새로운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요10:37-38

The Trinity Adored by The Duke of Mantua and His Family
Peter Paul Rubens 1604-1606

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요10:37-38)

폭도들의 위협 앞에서 안전한 공간은 없습니다. 그 상황에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고민해보아야 할 증거를 호소하십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라고는 바라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하나님이 하실 일이라면 멈춰섰어야 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그들은 그것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하나님을 몰랐을까요? 그들은 도무지 예수님을 믿기 어려웠을지라도,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신앙하기 어려웠을지라도 적어도 예수님이 하신 일은 믿었어야 합니다. 기적(miracles)을 포함하여 신앙하는 일에는 제한이 없어야 합니다. 본문의 논쟁은 10장 25절에서 나타났고, 14장10-11절에도 반복됩니다.

아버지 안에 예수가 있고 예수 안에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유대인들은 자기 신앙을 돌이켜 보았어야 합니다. 30절에 대한 설명으로 31-38절 덧붙여서 가르치십니다. 14장 10-11절에 다시 한번 주제로 등장하고, 17장 21절에도 나타납니다. 신학자들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이러한 관계를 ‘서로가 서로의 안에’ 거하는, ‘상호내주’라고 명명했습니다. 5장 19절이 상호내주의 근거 구절입니다. 상호내주는 신앙인에게 중요한 개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이 안에 계시고 그 사람 또한 예수 안에 있다는 신앙 의미를 알려줍니다.

10:37–38. Having secured a breathing space before the threat of mob violence would force him to retreat (v. 39), Jesus appeals to the evidence he wants his opponents to weigh. He does not expect to be believed on the basis of his own naked claims. But if what he does is those things that the Father does (cf. notes on 5:19–23), should not that fact give them pause? Or, by implication, are they so ignorant of God that they do not really know what he does? Even if they cannot yet bring themselves to believe Jesus, i.e. to absorb and believe his words, the least they should do is believe the works (erga), which include, but should probably not be restricted to, the ‘miracles’ (niv). The argument is a reiteration of v. 25 (cf. notes), and it will surface again in 14:10–11.
The reason why the Jews should reflect on his deeds is that they might learn and understand (gnōte kai ginōskēte—the difference is ‘between the act of knowing and the continuing progress in understanding’) that the Father is in Jesus and Jesus is in the Father. This is offered in explanation of v. 30, which provoked the running debate of vv. 31–38. As a theme, it will not be developed thoroughly until 14:10–11; 17:21. There is between the Father and the Son what theologians call a ‘mutual co-inherence’: each is ‘in’ the other. This mutual co-inherence is the grounding of the teaching of 5:19ff. More important, it extends, in some derivative sense, to embrace believers, who are ‘in’ Christ while he is ‘in’ them (cf. notes on 14:20ff.). – JOHN(PNTC)

태초부터 말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 되게 하소서. 삶 자체가 말씀 안에 거하고, 말씀으로 삶이 드러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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