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생각]

[기묘한 생각]근세철학1 간단 정리 0.1

르네상스와 이성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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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500-1750년

합리와 경험

만족스러운 삶을 위해서는 합리적인 방식이 좋은가, 경험적인 방식이 좋은가.

목적

아마 경험이다. 수단 보다는 목적이 중요하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 서기 1469-1527년“군주가 이른바 미덕을 모두 따를 수 없음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미덕을 찾다가는 금세 반역자에게 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 않나.어떤 수단을 사용할까 이것저것 만지작 거리다가 망하기 일쑤다. 차라리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목적을 획득하고나면 수단은 금세 정당화 된다. 승리자가 언제나 정의를 획득하지 않나.만족스러운 삶이란 목적의 획득으로 이루어진다.

평온

합리다. 명성과 평온은 정반대다. – 미셸 드 몽테뉴 서기 1533-1592년타인의 평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그들에게 내가 이리 저리 휘둘린다. 이리 저리 휘둘리는데 어찌 평화로울 수 있을까.평화로우로면 명성을 포기하고 명성을 얻으려면 평화는 포기하라.당신은 평화로 만족하는가, 명성으로 만족하는가.

지식

합리다. 많이 알수록 더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다. – 프렌시스 베이컨 1561-1626년우리는 우상이 있다.종족의 우상. 인간종족의 관점으로 함부로 다른 것들을 평가한다.동굴의 우상.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제량으로 해석한다.시장의 우상. 사회적 관습으로 자기의 경험을 왜곡한다.극장의 우상. 널리 알려진 학설로 세상을 다르게 본다.이러한 우상들로부터 벗어나야 맑은 시야를 획득하고, 더 만족스러운 방법을 찾을 수 있다.아는 것이 힘이다.

물질

합리다. 인간이나 기계나 다름없다. – 토머스 홉스 서기 1588-1679년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집착하지 말자. 괜한 미신적 함정에 빠질 수 있다.세상은 그저 물질이라고 생각하자. 인간도 다를 바 없다. “우주 만물은 유형의 물체다”이것만 잘 이해해도 훨씬 만족할 수 있겠다.

생각

합리다. 나는 누구인가. 생각덩어리다. – 르네 데카르트 서기 1596-1650년확신할만한 분명하고 영원한 것이 이 세상에 있을까. 나는 없다고 본다. 있다고 없다고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말고 무엇을 말할 수 있으랴.이 생각 덩어리. ‘생각’만이 그나마 확신 있는 것이고, 나머지는 다 불확실하다.그러므로 만족하고 싶다면 스스로의 ‘생각’에 집중하고, 이외의 모든 것들은 의심해보라.

갈대

경험이다. 인간은 갈대에 불과하다. – 블레즈 파스칼 서기 1623-1662년“인간은 자연 가운데 가장 연약한 갈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이성적으로 사는 삶, 자유로운 삶이 행복할 것이라 그 자체를 이성적으로 생각하겠지. 하지만 이성이 그정도로 믿을만한 것일까. 이성은 인간의 것이요, 인간은 갈대와 같이 이리저리 흔들리는대도?이성적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 신을 붙드는 것이 훨신 만족할 만한 방식이지 않을까.

실체

합리다. 우주는 신이다. – 바뤼흐 스피노자 1632-1677년포장, 표면, 형태는 변한다. 변하는 것들은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실체, 본체를 알고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이리 저리 실체를 찾아보라. 만물의 근본적 실체는 자연이다.하나만 더 생각하자. 그 자연은 그저 자연일 수 없다. 그 자존할만한 실체가 있어야 한다.그렇다. 신이다.세계는 신이다.이 신과 하나가 될 수록 더 만족할 수 있다.

백지

경험이다. 모든 것이 경험의 결과다. – 존 로크 1632-1704년아이들을 보라. 무엇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하나? 아니다. 빈손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죽는다.“정신이 아무런 글자도 아무런 관념도 쓰여있지 않은 하얀 종이라고 가정해보자. 그것이 어떻게 채워지겠는가?”그렇다면 중요한 건 하나다.바로 경험이다.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싶은가? 어떤 경험을 할 것인가에 집중하라.

둘 다

이성과 경험, 경험과 이성이다. –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1646-1716년

구별해서 더 유용한 도구를 선택하자. 분석이 유용할 때는 이성을, 분석할 필요 없을 때는 경험을.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이유는 없다.

인간은 경험하고 반추하는 과정을 통해 지식과 진리를 드러내고 습득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더 만족스러운 삶이 가능하다.

지각자 신

경험이다. 지각하는 자가 없다면 무의미하다. 그래서 신은 존재할 수 밖에. – 조지 버클리 1685-1753년

실체든 본질이든 뭐든 말이다.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외물이 존재한들 우리가 그것을 알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경험이다.

한 계단 더 오르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경험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커다란 함정을 극복해야 한다.

아무도 보거나 듣지 못한 나무는 없는 나무일까.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을 지라도 우리는 나무가 분명히 거기에 있었다고 할 때가 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지각경험으로 말하자면 바로 이때 우리는 신을 소환해야 한다.

우리와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들,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가 결코 경험하지 못한 것들. 이 것들은 도대체 누가 보고 들었을까. 신이다. 신이 보고 듣고 있기에 우리와 상관없는 것들도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만족할만한 삶을 살고 싶은가. 눈에 보이고 들을 수 있는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라. 그리고 그것들을 존재하게 하는 신을 소중히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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