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생각]

[기묘한 생각]중세철학 간단 정리 0.1

중세 철학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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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Linnea Sandbakk on Unsplash

서기 250-1500년

신과 인간

질문은 동일하다. 어떻게 하면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중세인들은 끈임없이 신과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과 인간을 이해하면 더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유의지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서기354-430년

 

세상은 신이 창조하셨다. 인간도 신이 창조하셨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를 부여하셨다.

스스로의 의지로 선과 악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완전한 신이 창조했다면 이 세상에 악이 왜 있는가?

신이 불완전해서가 아니다. 인간이 자유의지로 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신은 그 자유로 선을 선택하기를, 선으로 악을 이기기를 원하신다.

악은 신이 아니라 인간의 결과다.

예견

신은 인간 자유의지의 결과를 모두 안다. – 보이티우스 서기 480-525년경

 

신은 영원하다. 영원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현재처럼 하나다. 시간의 흐름을 넘어선 영원은 미래가 현재와 다름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신은 미래를 안다. 자유의지의 결과조차 예견한다.

 

“모든 것을 예지하는 신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관찰자로 머무르며, 항상 현재하는 그 시선의 영원성은 선인들에게는 상을, 악한 이들에게는 벌을 주면서 우리 행위의 미래의 성질과 함께 가게 된다. (…) 그러니 너희는 악덕을 거부하고 덕을 키워라. 올바른 희망으로 정신을 들어 올리고, 저 높은 곳으로 몸을 낮춰 간청을 드려라. (…) 너희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심판관의 눈앞에서 행동할 때 […] 너희에게는 올바름이라는 커다란 필연성이 부과되어 있느니라.”(<철학의 위안> V, 산문6)

 

과거를 모두 알고 현재와 미래까지도 아는 유일한 관찰자, 신은 선과 악의 상과 벌로 미래를 만들어 가신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그 일의 도구로 사용된다.

영혼

신과 인간은 영혼으로 만나 불멸한다. – 아비센나(이븐 시나) 서기 980-1037년

 

눈이 가려진 인간이 공중에 떠 있다. 손과 발이 스스로조차도 만질 수 없는 상태다.(상상해보는 사고 실험이다.) 지각이나 감각이 통제 된 상태다. 그 때 인간은 스스로를 느낄 수 없을까. 아니다. 육체로 감각할 수 없어도 인간은 스스로 존재한다고 확신할 것이다. 자아라고 할 수 있는 영혼은 육체와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영혼은 육체와 별개로 존재한다. 이 영혼은 껍데기 육체와 달리 불멸하는 인간의 알맹이라고 할 수 있다.

존재

인간이 완전한 존재를 신이라고 부른다면, 신은 존재한다. – 안셀무스 서기1033-1109년

 

신은 불완전한가, 완전한가? 완전하다.

신은 때로 작은가, 언제나 무엇보다 큰가? 언제나 무엇보다 크다.

이미 우리는 신이 있거나 없다고 할 때 어떤 신을 상상한다. 그럴 때 그 신은 마음 속에만 있는 실제로는 없는 신인가?

마음 속에만 있는 신은 어불성설이다. 신은 무엇보다 크고 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이 있거나 없다고 말할 때는 모순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완전한 존재를 신이라고 부른다면, 이미 신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다.

종교철학

신을 따르는 종교는 인간의 철학과 공존해야 한다. – 아베로에스 서기1126-1198년

꾸란은 아무래도 문자 그대로 읽을 수 없다. 시적이고 철학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신에 대한 예언서이기 때문이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적으로 추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신이 주신 계시의 예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가진 모든 능력을 활용해야 하고, 그 중 가장 훌륭한 능력인 추론능력을 사용해야 한다.

부정신학

인간이 신을 온전하게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 모네스 마이모니데스 – 서기 1135-1204년

“지성인들이 신의 본질을 탐구하다 보면 그들의 이해력으론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신이 어떤 존재인지 말할 수 없다. 신은 완전하셔서 영원하고 무한하기에, 신을 어떻다고 정의내리는 일은 신을 가두는 일이 된다. ‘신은 어떻다’고 긍정어로 표현한다면 언제나 오답이다.

 

‘신은 강력하다’ 아니라 ‘신은 무능하지 않다.’

‘신은 영원하다’ 아니라 ‘신은 시한이 없다.’

이처럼 이중부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영원

우리는 이것 저것으로 성장하다 결국 신과 영원한 합일을 이루리라 – 잘랄라딘 무하마드 루미 서기1207-1273년

“나는 돌로 죽어 꽃이 되었고, 꽃으로 죽어 짐승이 되었다. 그리고 짐승으로 죽어 사람이 되었다.”

 

신과 인간은 사랑으로 합일을 이룬다(수피). 우리는 그 여행을 하는 중이다. 춤추고 노래하자. 애정으로 하나되는 것처럼 우리도 신과 하나가 되리라.

아리스토 신학

신을 이해하는 데에 인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매우 유용하다. – 토마스 아퀴나스 1225-1274년경

 

인간은 감각 경험으로 지식을 습득한다. 그리고 그 경험으로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지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사상은 아퀴나스가 하나님을 이해하는 신학 사상에 그대로 사용된다. 매우 유용하고 가장 적합한 도구로 사용한다.

 

아퀴나스는 이 도구를 사용하여 『신학대전』을 완성했다.

플라톤 신학

신은 어떤 것이 존재할 가능성이 생기기 전에 나타난 존재다. 이를 절대자(Not-other)라고 하자. – 니콜라우스 폰 쿠에스 서기 1401-1464년

 

아퀴나스와 달리 폰 쿠에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플라톤적 관점으로 신을 찾았다. 그 모든 이해를 넘어선, 모든 존재들을 존재하게 하는, 모든 존재들 보다 앞선 신. 이 신을 절대자라 부르는 것이 가장 근접한 표현이리라.

신앙

인간은 철학이 아니라 신앙으로 신을 만난다. –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 서기1466-1536년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제공하는 이성적 도구는 도리어 무거운 짐이다. 신에게 자신을 투신하는 어리석음이 신앙이며, 신은 이 신앙으로 만날 수 있다.

훌륭한 이성으로 신을 믿는 이들의 어리석음과 부패를 보라. 그들은 돌이켜야 한다. 신과 직접적인 관계를 회복하고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신앙을 해야한다.

이러한 성서의 진정한 정신으로 돌이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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