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생각]

[기묘한 생각]고대철학 간단 정리 0.1

고대철학 기원전 700년 – 서기 250년

cristina-gottardi-585081-unsplashPhoto by Cristina Gottardi on Unsplash

 

만족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싶다.

즐거움, 쾌락, 의미있는 삶.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다.

지금의 흡족함을 더 자주, 더 깊이 느끼면서 살고 싶다.

어떻게 하면 될까?

뿌리

뿌리를 알면 더 만족할 수 있다.

가지 없는 열매는 없고, 뿌리 없는 가지도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뿌리다. 근원, 근본, 기본, 바탕.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다.

세상의 기초는 무엇인가?

세상의 기초는 ‘신’이다.

생명을 움트고 자라게 하는 태양, 생명의 터가 되는 대지, 열매가 맺게하는 구름과 비, 그것들을 가로막고 썩어지게 하는 죽음. 모두 우리 손 밖에 있다. 그것들은 무엇인가?

신이다.

신의 뜻을 알고 따르면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다.

세상의 기초는 ‘물’이다. – 밀레투스의 탈레스 기원전 624-546

신은 너무 변덕스럽다. 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더 불만족할 때가 많다.

더 만족하고 싶다.

모든 것의 뿌리, 모든 것의 필수, 변화 가능한 뿌리.

무엇일까?

물이다.

물을 알고 그 흐름을 이해하듯 삶을 이해하고 살면 더 만족할 수 있다.

세상의 기초는 도다. – 노자 기원전 6세기경

모든 것의 뿌리, 모든 것의 필수, 변화 가능한 뿌리.

무엇일까?

도다.

나는 그것을 도라고 부른다.

도는 무엇인가?

누가 도는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말할 수 없는 것이 도다.

도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근본적인 무엇이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도를 따르는 삶의 결과이다.

도를 따라 덕을 이룬다면,

그 삶은 맑고 투명한 생각으로 이루어진 삶,

그래서 사려 깊은 행동을 하는 삶,

그러므로 만물과 조화로운 삶,

그로 인해 평화롭고 고요한 삶일 것이다.

나는 이를 무위라고 부른다.

세상의 기초는 수다. – 피타고라스 기원전 570-495년경

만물은 수, 수의 비율로 구성되어 있다. 수를 알면 더 만족할 수 밖에 없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보라. 세상은 최적의 비율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음악을 들어보라. 기분 좋게 들리는 음은 최적의 비율로 이루어져 있다.

생노병사

세상의 기초는 생노병사다. 이를 깨달으면, 즉 알고 받아들이면 더 만족할 수 있다. – 고타마 싯다르타 기원전 563-483년경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만물은 생노병사한다. 이를 그 무엇도 피할 수 없다.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 만족하는 삶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이것이 진리요, 이것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깨달음이다.

너는 깨달았는가?

성실

세상의 기초는 성실이다. – 공자 기원전 551-479년

“성실하면 형태가 나타나고, 형태가 나타나면 뚜렷해지고, 뚜렷해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움직이고, 움직이면 바뀌게 되고, 바뀌게 되면 다른 사람을 교화시킬 수 있다. 오로지 천하의 성실함만이 능히 교화시킬 수 있다.”

이를 통해 군신관계, 부자관계, 부부관계, 형제관계, 친구관계가 충실해진다. 삶이 만족스러워진다.

변화

세상의 기초는 ‘변화원리’이다. – 헤라클레이토스 기원전 535-475년경

세상이 유지되는 근분은 어떤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원리이다. 변화라는 원리다.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은 하나이며 같다.” 올라가고 내려감, 차갑고 뜨거움, 살고 죽음이라는 끊임없는 변화가 세상이다.

이 변화를 이해한다면 더 만족할 수 있다.

하나

세상의 기초는 ‘일원성’이다. – 파르메니데스 기원전 515-445년경

‘없는 데 있다’는 모순이다. 비존재의 존재란 어불성설이다. 무에서는 어떤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무 아닌가. 그렇다면 이렇게 바꿔 말할 수 있다. 비존재한다면 언제나 없는 것이겠지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근본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변화란 없다.

뿌리의 뿌리, 근본의 근본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것 저것 그것들은 모두 하나다.

세상이 근원적으로 하나라는 것을 이해하면 더 만족할 수 있다.

인간

세상의 기초는 인간이다. – 프로타고라스 기원전 490-420년경

수 많은 이야기들을 듣지 않는가. 다들 일견 부당하고 타당하다. 상대적이란 말이다. 관점에 따라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이 관점, 인간을 말한다.

인간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달리 보인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다.

사랑

세상의 기초는 사랑이다. – 묵자 기원전 470-391년경

혈연, 지연, 학연을 떠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어떤 요소에도 상관없이 아껴주는 것을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사랑, 겸애, 박애 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복숭아를 주면, 그에게 자두로 갚는다” 이러한 정신으로 세상은 유지된다. 무엇이라고 부르든 이러한 정신을 더 제대로 실천할 수 있다면 세상은 더욱 조화롭고 사회는 더욱 건설적일 수 있다.

사랑으로 우리는 더 만족할 수 있다.

원자

세상의 기초는 원자다. – 데모크리토스 기원전 460-371년경

세상의 기초를 생각한다면 근본적으로 어떤 물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바위를 쪼개 자갈이되고 자갈을 쪼개 모래가 되듯, 쪼개고 쪼개다보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어떤 물질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그것을 원자라고 부르자. 그러면 반대로 이것들의 조합인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도 부족함이 없다. 하나의 생명인 ‘인간은 하나의 소우주’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겠지.

이 원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욱 만족할 수 있으리라.

도덕

도덕적이지 않은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 소크라테스 기원전 469-399년

아무리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더라도 다른 이에게 해가 되는 삶이라면, 그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사람의 행복은 이 세상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서로서로 피해를 주고 받는다면 세상에서 우리는 만족할 수 있을까. 결국에는 도덕성이다.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이 도덕성을 마주하는 방법이다.

선과 악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더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다.

이데아

세상의 기초는 이데아다 – 플라톤 기원전 427-347년경

스승인 소크라테스는 악법으로 인해 죽었다. 법, 순수한 법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내 스승은 악법으로 인해 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세상에 수 많은 것들은 진정 본질적인 어떤 것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진정한 법은 그렇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 그림자. 이 그림자, 환상에 속아서는 안된다. 그림자를 보고 사람을 알 수 없듯이 환상을 보고 본질을 알 수 없다. 이데아는 그림자 너머에 있다.

이 이데아를 볼 수 있다면 더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경험

세상의 기초는 경험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384-322년

스승인 플라톤은 그림자 너머의 이데아를 주창했다. 옳고도 옳다. 그림자와 본체를 구별하지 못한다면 혼란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데아를 어떻게 직시할 수 있을까. 의자의 이데아는 어떤 형태일까? 사과의 이데아는 어떤 맛일까? 이데아는 우리의 경험을 통해 추정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의자의 이데아는 훌륭한 의자를 많이 앉아보면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고, 훌륭한 사과는 사과를 많이 맛보다 보면 상상할 수 있으리라. 결국 이데아는 그림자를 통해서 알아갈 수 있다.

그림자를 통해 본체를 추정할 수 있다면, 주변 환경과 경험을 통해 진리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이러한 태도로 더 만족할 수 있다.

평화

세상의 기초는 평화다. – 에피쿠로스 기원전 341-270년

세상의 기초, 인간 삶의 기초는 결국 평화, 평온, 안온함에 있다. “현명하고, 명예롭고, 공정하게 살지 않고 즐거운 삶을 살기란 불가능하며, 또한 즐겁게 살지 않고 현명하게, 명예롭고, 공정하게 살기란 불가능”하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매일의 평안, 쾌락을 추구하는 삶이라면 만족할 수 있으리라. 결국 그것이 모든 인간의 세상이리라.

만족

세상의 기초는 만족이다. – 시노페의 디오게네스 기원전 404-323년경

어떻게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그 질문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족 그것이 결국 인간이 사는 삶과 세상의 목적이자 기초이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것을 지닌 사람은 가장 많은 것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나는 남은 음식과 누더기에도 만족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삶이 만족스럽다.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싶은가? 만족하라.

자연

세상의 기초는 자연이다 – 키프로스의 제논 기원전 332-265년

자연을 보라. 광활하고 광대한 자연 속에 인간은 해변의 작은 모래알과 같다. 인간이 하나의 모래알과 다른 하나는 바로 영혼이다. 이성이자 자유의지다. 우리가 이 영혼으로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영위한다면, 세상의 기초와 하나가 되어 살아간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삶이요 만족스러운 삶일 것이다.

물처럼 자연과 함께 흐른다면 그것이 행복이리라.

고대철학 기원전 700년 서기 250년

세상의 기초에 왜 이토록 관심을 가질까. 우리가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후회없는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먹고 마시다, 굶주리고 목마르다 할 수 있는 생각은 결국 여기에 다다르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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