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구원]

[기묘한 인간]죽음

The Doubt: 'Can these Dry Bones Live?' exhibited 1855 by Henry Alexander Bowler 1824-1903

Henry Alexander Bowler The Doubt: ‘Can these Dry Bones Live?’ exhibited 1855 출처

이 그림에서는 젊은 여인이 신실한 요한(John Faithful)이라는 사람의 묘비에 기대어 있고, 그 묘비에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적혀 있다. 그 옆에 있는 묘비에는 RESURGAM(“나는 일어날 것이다”)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는데, 이 단어는 당시 많은 묘비에 새겨졌던 단어다. 그 무던에는 마로니에 나무가 싹트고 있고, 형체를 드러낸 두개골 위에 영혼을 상징하는 나비가 앉아 있다. – 톰 라이트,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 24

호불호 / 고통무통 / 끝과정 / 의미무의미 / 죄와 죽음 /.  장기기증 / 매장화장 / 자살안락사

허무

가끔 그럴 때 있잖아요
내가 너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
하찮게 느껴지잖아요
지금까지 걸어왔던 저 굽은 길도 – 심규선, ‘음악가의 연인’ 가사 중

죽음은 알수 없는 신비

우리들은 죽음을 미워한다. 죽음의 뜻을 알 수 없기 때문에 – 윌리엄 모리스 Wiliam Morris

 

2017-11-16 22.48.34 도깨비의 죽음

도깨비의 죽음?

 

피할 수 없는 죽음

우리는 죽음의 감시 아래서 살고 있다. 무슨 짓을 해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죽음을 만나는 게 아니라, 죽음은 애초부터 우리 안에 있고, 우리가 어딜 가든 우리와 동행한다. – 폴 오스터, ‘스퀴즈 플레이’, 18장 중에서

죽음이란 인생의 종말에 오는 것으로서 오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두려워 하는 것은 얼마나 묘한 일인가 – 셰익스피어, ‘줄리어스 시저’ 중에서

인생은 즐거운 것이지만 그래도 죽음이 다가오는 것이다. 죽음의 부름은 너무 빠르기도 하다. – W.S.길버트 W.S.Gilbert

아 때아닌 죽음이 서리와 같이 이렇게도 빨리 나의 꽃을 지게 하는구나 – 로버트 번즈 Robert Burns

죽을 운명인 것이 삶인가, 아니면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죽음인가 – 아우구스티누스

폭력, 형벌

자연사란 없다. 인간에게 닥치는 그 어떤 일도 절대 자연스럽지 않다. 이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은 돌발 사건이다. 인간이 죽음을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죽음은 부당한 폭력이다. – 시몬 드 보부아르

죽는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 죽고나면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 차갑게 누워 있고 움직이지 않으며 썩어가는 것이다. / 피가 통해서 따스하게 살아있는 육체는 /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 유쾌하느 것은 이 영혼이 불바다 속에 목욕하며 / 몸은 살을 에이는 얼음의 지옥 속에 패쇄되는 것이다. / 보이지 않게 휘몰아치는 바람에 실려서 / 매달린 세계를 끊임없이 맹렬하게 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싫증이 나고 몸서리 나는 / 노쇠와 병고와 빈곤과 감금도 / 저 무서운 죽음에 비하면 극락과 같은 것이다. – 셰익스피어, ‘헛소동’ 클라우디오 claudio 대사 중에서

바르트에 따르면, 죄에는 죽음이 뒤따른다. 죽음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발생된 인간의 고통이다. 죽음은 무성의 궁극적인 승리로 이해될 수 있다. 무성은 죽음을 사용하여 피조물의 실존을 파괴할 수 있고, 창조주 하나님의 명예를 손상시킬 수 있다. – 정성민, 『폴 틸리히와 칼 바르트의 대화』, 157

바르트의 죽음에 관한 이해는 헤겔의 이해와 전적으로 다르다. 바르트는 죽음을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발생된 고통으로 이해한다. 죽음은 생명의 자연스런 결말이 아니다. 더 나아가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인 것이다. 죄로 인해 죽음이 온 것이다. – 정성민, 『폴 틸리히와 칼 바르트의 대화』, 197

삶의 관계를 완전히 파괴하는 관계상실의 사건이다 – 윙엘 E. Jungel, Tod, 145

죽음은 허수아비

죽음은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 에픽테토스, [대담집], II, I, 17 재인용 모리스 말루, [라루스 세계 명언 대사전], 645

죽음은 삶의 사건이 아니다. 우리는 죽음을 체험하지 못한다. –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그렇다. 무한히 단적인 죽음을 향해 가는 삶이며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의 죽음을 알거나 자기 주검을 본 적은 없다.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죽음을 향해 가는 무한한 여정이 삶과 죽음이다. 인간적인 죽음이나 삶은 그저 결과다. – 사사키 아타루, 제자리 걸음을 멈추고, 278

죽음 후에는 / 관, 장례식과 무덤에 대한 계산서가 온다. / 죽음 후에 집을 찾는 자가 와서, 방을 구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 죽음 후에는 비석장사가 온다. / 죽음 후에는 생명보험 회사원이 찾아온다. – 마르티 Kurt Marti, Leichenreden, 1969, 27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 그들의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없어진 지 오래이니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들에게 돌아갈 몫은 영원히 없느니라. – 전도서9:5,6

나는 바르는 게 없다 / 나는 두려운 게 없다 / 나는 자유인이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Nikos Kazantzakis 묘비명

삶의 완성

물론 노년은 죽음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 역시 여전히 삶입니다. 죽음은 단순한 중단이나 소멸이 아닙니다…죽음은 무화가 아니라 삶의 완성과 관련된 가치입니다. 우리 시대는 그러한 죽음의 가치를 잊어버렸지요. – 로마노 과르디니, 삶과 나이, 175

신 없는 단독자의 죽음

나는 죽어서 썩으면 내 자아 중에 살아남는 것은 없으리라고 믿는다. 나는 젊지 않으며 삶을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사멸한다는 생각에 겁에 질려 벌벌 떠는 짓을 경멸해야 한다. 행복은 언젠가 끝난다고 할지라도 그래도 진짜 행복이며, 사유와 사랑도 한없이 지속되지 않는다고 해서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단두대에 설 때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우리는 바로 그 자긍심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인간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올바로 고찰해야 한다. 설령 활짝 열린 과학의 창문들이, 처음에는 대대로 내려온 인간화한 신화들이라는 안락한 실내 온기에 적응되어 있던 우리를 덜덜 떨게 할지라도, 결국에는 신선한 공기가 우리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드넓은 세상이 우리 앞에 장엄함을 드러낼 것이다.

I believe that when I die I shall rot, and nothing of my ego will survive. I am not young and I love life. But I should scorn to shiver with terror at the thought of annihilation. Happiness is nonetheless true happiness because it must come to and end, nor do thought and love lose their value because they are not everlasting. Many a man has borne himself proudly on the scaffold: surely the same pride should teach us to think truly about man’s place in the world. Even if the open windows of science at first make us shiver after the cosy indoor warmth of traditional humanizing myths, in the end the fresh air brings vigour, and the great spaces have a splendour of their own.

– 버트런트 러셀, 내가 믿는 것(1925): 재인용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543

경험 밖 죽음

죽음은 삶의 사건이 아니다. 우리는 죽음을 체험하지 못한다. –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L. Wittgenstein,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6. 4311, Schriften I, Frankfurt 1960, 81.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 나는 태어나기 전 영겁에 걸친 세월을 죽은 채로 있었고 그 사실은 내게 일말의 고통을 준 적도 없다.

I do not fear death. I had been dead for billions and billions of years before I was born, and had not suffered the slightest inconvenience from it.

– 마크 트웨인 Mark Twain 재인용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542

 

끝이 아닌 다음으로 이행하는 자연적인 단계

헤겔은 죽음이 삶의 마지막이 아니고 자연과정 속 하나의 자연스러운 단계이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를 궁극적인 절망으로 몰아가는 두렵고 무서운 경험이 아니라고 말한다. – G.W.F. Hegel, Phenomenology of Spirit, trans. A.V. Miller, J.N. Findlay의 서문과 본문 분석(New york:Oxford University Press, 1977), 106-107) 재인용 정성민, 폴 틸리히와 칼 바르트의 대화, 93

죽음의 극복이란 죽음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 후에 이어지는 세계는 어떤 의미일까? 윤회를 전제하는 불교는 죽음 후에 또 다른 삶이 시작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새로운 삶의 형태와 질을 결정하는 것은 현재의 삶이다. – 조성택, 미산 스님, 김홍근, 인생교과서 부처, 104

태양의 열기, 노도와 같은 겨울 광풍은 / 이제는 더 두려워할 것 없다. / 너는 이 세상에서의 역사를 끝마치고 / 보수를 받고는 집으로 돌아간다. / 황금의 젊은이들, 남자나 여자도 / 굴뚝 청소부처럼 / 모두들 티끌러 돌아가고 있는 게다.

권력자의 찌푸림도 폭군의 채찍도 / 이제는 더 두려워 할 것 없다. / 입을 것 먹을 것들의 염려도 없다. / 너에게 있어서 갈대는 참나무 같도다. / 왕위나 학문이나 과학도 / 같은 길을 따르기 마련이며 / 모두들 티끌로 돌아가고 있는 게다.

번갯불이나 낙뢰도 / 이제는 더 두려워 할 것 없다. / 중상이나 비난도 기쁨도 괴로움도 / 이제는 모두 끝나고 말 것이다. / 젊은 연인이나 사랑하는 사람들도 / 같은 길을 따르기 마련이며 / 모두들 티끌로 돌아가고 있는 게다. – 심벨린 Cymbeline

죽음이란 없다. 죽음처럼 보이는 것은 / 오직 단순한 변화에 지나지 아니한다. / 급기야 살아버리는 이생의 생명은 / 죽음이라 부르는 문을 뚫고 나아가서 / 더 할 나위 없이 행복한 생명으로 / 옮겨가는 것이다. – 롱펠로 Longfellow

죽음 앞에서 나는 저편에 동트는 여명을 본다. – 조지 메례디스 George Meredith

완전한 소멸

나의 례스비아여 살아서 사랑을 합시다. / 심술궂고 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 그저 지껄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좋아요. / 해는 지고 또 다시 떠오릅니다. / 그리고 짧은 인생이 끝났을 때 / 밝지 않는 밤을 잠자는 것이요. – 카툴루스 Catullus

그 좋은 밤으로 결코 온화하게 들어가지 마소서. / 스러져가는 빛 앞에서 화를 폭발하소서 – 딜런 토마스 Dylan Thomas

해방

나는 끊임없이 안락한 죽음을 사모하고 있다. – 키츠 Keats

모든 것에 지쳐버린 나는 편안하게 죽고 싶다. – 셰익스피어

삶에의 집착에서 떠나고 / 희망과 공포로부터 놓임을 받고 / 신들에게 잠시 감사를 드린다. / 영원히 사는 자 없으며 / 죽음을 초월하는 자 없느니라. / 권태롭게 흐르는 내도 / 급기야는 바다에 이르게 된다.

저편에서는 해도 별도 반짝이지 않으며 / 빛의 명암도 없다. / 파도 소리도 들리지 않으며 / 어둠과 고요 속에 파묻히고 있다. / 겨울에, 봄에 나뭇잎은 볼 수 없고 / 낮도 밤도 없는도다. / 끝없이 이어지는 밤에 / 끝없이 계속해서 잠자느니라. – 스윈번 Swinburne, ‘프로서피나의 정원 The Garden of Proserpina’중에서

혼돈과 죽음으로부터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

죽음은 인간 존재의 생명 리듬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정확하게 죽음을창조하셨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우주’, 즉 세상의 질서와 아름다움이 그 이전의 ‘혼돈’을 이겨 승리하는 것처럼, 그렇게 ‘삶’은 ‘죽음’을 이겨 승리하는 것이다…하느님의 창조행위는 혼돈과 죽음으로부터, 형태가 없는 심연과 무덤의 침묵으로부터 구원하시는 활동이다. 하느님께서는 혼돈과 죽음으로부터 떼어내시며 ‘구원하시면서’ 창조하신다. – 안또니오 보노라, [코헬렛 삶의 노고와 기쁨], 201

죽음 앞에서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인간

죽음이란 공허로 해체되는 것인가 아니면 진정한 것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해 답을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종교뿐입니다. 신에 대한 믿음 없이 늙는 건 좋지 않습니다. 어떤 미사여구로도 근원적인 문제를 피해갈 수 없으니까요. 노인의 삶에서 핵심은 기도일 수밖에 없지요. 어떤 종류의 기도이든 말입니다. – 로마노 과르디니, 삶과 나이, 136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내 눈으로 그를 보리니 – 욥19:26,27

죽음을 미루지 않은 예수

꾸물거리며 죽음을 지연하는 것은 현대 의학의 유산이다. 생명이 심장 박동과 뇌파로 환원된 문화 속에서 죽음은 그것을 넘어서는 어떤 의미를 가진 것으로 결코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생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의미도 없고, 영성도 없고, 구원도 없기 때문에, 절박하게 그것을 연기하고, 미루고, 부인하려는 노력만 더해 간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꾸물거리며 지연되지 않는다. – 유진 피터슨, 현실 하나님의 세계, 333,334

비참하게 보는 것은 헬라의 유산

죽음을 비참한 것으로 보는 것은 헬라 문화의 유산이다. 헬라인들은 비참한 죽음에 대해서 세련되게 글을 썼다.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이, 치명적 결험을 불러온 상황 속에 엮이고, 영웅주의나 희망과는 상관없이 그 선의는 소멸된다. – 유진 피터슨, 『현실, 하나님의 세계』, 333

그리스 사람들은 삶에 역점을 두었기에 죽음을 삶의 그림자 같은 연장으로만 생각했다. 이집트인들은 신체의 불멸,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 권력을 가졌던 사람들의 불멸을 믿었다. 유대인들은 죽음을 현실적인 방식으로 인식하고, 언젠가 이 세상에서 도달하게 될 행복과 정의의 비전으로 개인의 삶이 끝났다는 생각을 감내하였다. 기독교는 죽음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죽음 후의 삶을 약속함으로써 불행한 사람들을 위로하려고 노력했다. – 에리히 프롬, 나는 왜 무기력을 반복하는가, 91,92

성경은 죽음에 대한 다양한 전망들을 보여줄 뿐

죽음은 인간에게서 떼어버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성서의 첫 페이지부터 요한 묵시록에 이르기까지, 죽음은 항상 당면하고 있는 주제이다. / 그러나 성서 내에 죽음을 생각하는 유일한 방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여러 전망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각기 다른 전망들이 논리정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계시와 인간적 성찰의 점진적인 양상들을 반영하고 있다. – 안또니오 보노라, 코헬렛 삶의 노고와 기쁨, 200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 잠14:32

같은 죽음

우리가 죽는 것처럼 의인들도 죽는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들의 선행들로 인해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 보라! 우리처럼 그들도 비탄과 어둠 속에서 죽었다. 그러면 그들이 우리보다 더 가진 것이 무엇인가? 지금부터 우리는 동일하게 되었다. 무엇을 그들이 받을 것이며 또는 무엇을 그들이 영원히 볼 것인가? 보라! 그들은 확실히 죽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그들은 빛을 여원히 결코 보지 못할 것이다 – 에녹1서 102:6-8

다른 죽음

악인들은 압제자와 피압제자 사이,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 가난한 자와 부자 사이, 그리고 학살자와 피학살자 사이를 구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죽음이 동등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관심은 이 세상에서 태어난 모든 살아 있는 사람들의 평등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모든 죽은 자들의 평등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천년왕국 환상을 통해서 이러한 악인들의 죽음관이 옳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악인들에 의해 고난을 당하거나 처형된 남녀 증인들이 모두 하늘에서 부활하여 지금 천년왕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 이병학, 요한계시록 약자를 위한 예배와 저항의 책, 447,448, 계20:4 주석 중.

죽음의 푸가 – 파울 첼란

그가 외친다 더욱 깊이 땅나라로 파 들어가라 너희들 너희 다른 사람들은 노래하고 연주하라 / 그가 허리춤의 권총을 잡는다 그가 총을 휘두른다 그의 눈은 파랗다 / 더 깊이 삽을 박아라 너희들 너희 다른 사람들은 계속 무도곡을 연주하라

파울첼란, ‘죽음의 푸가’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11

끝나지 않는 질문

(죽음에 관한)질문은 계속될 수 있다. 왜냐하면, 죽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자문한다는 것은 인간 존재에 관한 문제 자체의 답을 찾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안또니오 보노라, 코헬렛 삶의 노고와 기쁨,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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