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큐티]

[기묘한 큐티]요한복음 4장 43-54절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시다

요4 43-54

43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시다(마 8:5-13; 눅 7:1-10)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44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45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9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병행구조

  • * 39 내가 행한 모든 것을…사마리아인들이 예수를 믿는다

40,41 이틀 유함

42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

43,44 이틀 지남

     45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사마리아인들은 ‘믿었다’. 그러나 갈릴리인들은 ‘영접했다’. 이상훈,『100주년주석 요한복음』, 173

병행구조

  • * 46,47 다시 갈릴리 가나에…전에 물로 포도주를

48-50a 가라 네 아들이 살아있다

50b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53 내려가는 길에서…아이가 살아있다

     54 유대에서 갈릴리에 오신 후…두 번째 표적

     50절 아들이 살아나기 전에 그 신하가 보여준 신앙을 강조한다. 이상훈『100주년주석 요한복음』, 182,4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의 공통된 경험에서 알 수 있는 사상이다. / “철학자들은 그들의 고향에서 어려운 생활을 한다”(Epictetus 3, 8b, 11). ”피리부는 자의 고향에 (그의 예술의) 친구가 없다” (Nr, 320). 그리하여 불트만은 4절이 당시에 유행하던 한 속담에서 온다고 보며, 앤더슨은 전승과정에서 첨가된 하나의 ‘요약적인 슬로건’(?)이라고 본다. 박수암, 『100주년기념주석 마가복음』, 288
  • *예수는 왜 자기 고향 나자렛에서, 그리고 친지의 사람들(친)에게서 존경을 받지 못했는가? 우리는 과연 선지자는 고향에서 대접받지 못한다는 이러한 예수의 말을 만고의 진리처럼 되씹어야만할 것인가? / 예수가 고향에서 대접(환영)받지 못한 것은 그 이유가 너무도 간단하다. 너무도 엉뚱한 짓만 하고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를 보아왔던 사람들이 모두 그의 엉뚱함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그의 언행은 일상적 존경(daily esteem)의 대상이 아니라 충격이요, 외경이요, 이단이요, 기적적 권능이었다. 김용옥, 『도올 논어』

갈릴리

  • *갈릴리는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에 약속된 지역이었다(수19:10-16, 32-39). 갈릴리라는 지명은 내륙호수인 ‘갈릴리바다’의 이름(이 호수는 히브리 성서에서 ‘긴네렛바다’, 그리고 구약 시대에는 해변 마을의 이름을 따서 ‘게네사렛호수’로 불렸다)이기도 하다. /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지만 성장한 곳은 갈릴리 나사렛이었다. 그는 나중에 이곳에서 가르치는 사역을 대부분 수행했다. 마이클 콜린스 외 편저,『바이블: 스토리 바이 스토리』, 310

표적과 기사

  • *좋은 믿음은 예수의 이적 때문이라는 보완적인 이유보다는 오로지 예수의 인격에 근거한 순수한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저자 요한의 신학이다(요4:41,5:24,11:25-27,20:29,20:31)…이적 때문에 소유한 신앙을 낮게 평하고 있다(요2:23,24, 6:2,14).이상훈『100주년주석 요한복음』, 185
  • *병자의 몸을 치유하는 이적은 예수께서 믿음대로 주신 영생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R.Brown, 『John』, 197
  • *그 아버지는 표적이 주는 유익이 없이도 예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을 했는데, 어떻게 말하면 표적의 방해가 없이 믿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표적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 이 남자에게 믿음이 생기게 한 것이다. 유진 피터슨, 『현실 하나님의 세계』, 176
  • *예수님의 사역에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예수님의 요구에 부합하게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음에 이르기는커녕 의심을 가졌고 혼란을 일으켰으며 잘못된 결론에 도달했다. 시간이 흘러감에도 계속 호기심어린 눈으로 이적과 표적에 만족하고 있었다. 목회와 신학 편집부 엮음,『두란노HOW주석 마태복음』,  39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 *주제 의식이 담긴 부분이다. 이적을 아직 보지 못했지만, 예수의 말씀 만을 믿고 떠났다. 이러한 종류의 신앙을 강조한다…그 좋은 신앙이란 보지 않고 믿는 행위이다. 이상훈『100주년주석 요한복음』,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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