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계시]

[기묘한 계시]01.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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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내가 영국 공군에서 강연을 마쳤을 때, 나이 많고 완고해 보이는 장교 한 사람이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말한 게 나에게는 하나도 쓸모가 없소. 하지만 잘 들어보시오. 나 역시 신앙이 있는 사람이오. 나도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고 있소. 나도 그분을 느끼고 있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이야기한 깔끔한 교의와 공식을 믿을 수가 없소. 진짜를 만나본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모두 너무나 하찮고 현학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일 뿐이요!” – C.S.루이스 Mere Christianity(London: Collins, 1952), p.130. 순전한 기독교(홍성사)

혼자 치킨을 먹었다. 실망할 때마다 하는 습관이다. 괜찮다고 자신을 격려하는 나름의 의식이기도 하다. 의미는 시간이 지날수록 쌓이는 듯하다. 처음엔 단지 맛있는 거 먹고 힘내자고 시작했다. 이제는 별스럽지도 않은 일로 닭대가리(어리석은 사람)가 되지 말자고, chicken(겁쟁이)이 되지는 말자고 소처럼 되뇌며 꼭꼭 씹어 먹는다.

몇 해 전 대형광장에서 ‘멍때리기 대회’ 가 있었다. 주최자에 따르면 ‘바쁜 도심 한복판에 멍때리는 집단을 등장시킴으로써, 바쁜 사람들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집단의 시각적 대조를 만드는 것을 목적’ 으로 진행된 ‘시각예술작업’이라고 한다. 분주한게 일반이라 쉬는 일이 사치가 되어버린 우리네 인생이 애달프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교회에서 마주하고나면 마음이 꽤나 아리다. 치킨이 당기는 일이다.

현대의 말은 무관심에 시달린다. 모두가 말만 할 뿐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오스 기니스, 폴스톡, 299

서울광장의 멍한 눈이 ‘쉬고 싶다’는 소리라면, 예배당의 초점 잃은 눈은 ‘쓸데없이 장황한 설교는 시간 맞춰 끝내주시라’ 는 날카로운 외침이다. 장광설은 직장 상사의 그것으로 이미 충분할 터이다.

(몽테뉴)위장에 고기를 가득 채운다 해도 그것을 소화할 수가 없다면 대체 무슨 소용인가? 우리 안에서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우리의 힘이 되어주지 않는다면 대체 무슨 소용인가? – 슈테판 츠바이크, 『위로하는 정신』, 62

좋게 보자면 신성한 일에 참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교회가 제공하는 일이겠지만, 아무래도 이건 아니지 싶다. 이미 진짜를 만났기에 교리는 필요없다는 사람들에게, 신학은 그저 현학적인 펜 놀음이라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수학능력시험 준비처럼 문답식 성경공부문제집을 푸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무엇을 말해야 할까. 넋을 놓은 사람들 생각에 헛헛해하며 혼자 치킨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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