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교회]

[기묘한 생각]신 아래 공동체적 활동에 참여한다는 일종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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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사람들 전부는 일종의 공동체적인 활동에 참여하는 거라는 확신으로 작업합니다. 제 역할이 글을 쓰는 것이든 읽는 것이든, 글에 반응을 보이는 것이든 그 차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플로베르는 신비주의자들이 신 안에서 서로 사랑하듯 우리는 예술 안에서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창작을 존중함으로써, 서로를 깊이 연결하면서도 넘어서는 어떤 것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 [작가란 무엇인가 2] 조이스 캐럴 오츠 177

 

이 ‘함께’는 구체적인 사람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 ‘홀로’ 떠나는 것 같은 내면적 여행으로서의 읽기’란, 사실상 나의 삶의 여정에서 조우했던 그리고 앞으로 조우할 무수한 이들과의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함깨 존재함’의 몸짓이라는 것. 결국 모든 ‘읽기’란 ‘함께 존재함’의 의미를 체현하기 위한 거라는 것. – 강남순, [배움에 관하여], 45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골4:7)

공동체는 두 가지 모습을 띤다. 즉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나타내는 “이스라엘”의 모습 곧 부정적인 모습과,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나타내는 “교회”의 모습 곧 긍정적인 모습을 나타낸다. 공동체는 하나님에게 거역하는 옛 인간의 모습을 갖는 동시에,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받는 새 인간의 모습을 갖고 있다. 그것은 “심판의 거울”인 동시에 “자비의 거울”이다. 하나님의 선택은 이러한 두 가지 모습을 가진 공동체를 통하여 현실적으로 집행된다. 각 개인의 선택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택과 공동체의 선택의 연관 속에서” 일어난다. – 김균진 『현대 신학사상』,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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