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인간]

[기묘한 생각]네 이웃을 네 몸같이

 

‘더럽다’고 낙인찍은 이웃들을 업신여기고 우회할 정도로 혐오한다. 그들의 태도에는 2000년전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상한 순혈주의적 집착이 덕지덕지 묻어있다.

예수는 사마리아인, 그것도 남자 문제 있다는 여인을 찾아가 만나시고 돌보시는 일로 당시 이웃 개념을 확장시켰다. 이 분들은 반대다. 협소한 그들의 세계관에 따라 ‘네(우리) 이웃’에 해당하는 수가 점점 줄고 있다. 그러다 정말 14만4천명만 구원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다.

이제는 지역갈등을 부추겨서 정당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것처럼, 혐오정서 부추겨서 교인이 느는 일은 없을테니 헛꿈은 깨셨으면 좋겠다.

타인에 대한 태도는 한편으론 자신에 대한 태도라고 들었다. 혐오에는 사실 자기혐오가 깃들어있다. 타인에게는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히 살겠다는 헛 선포보다는, 자기혐오에서 좀 벗어났으면 좋겠다. 괜한 적을 만들고 혐오한다고 해서 내 몸이 절로 깨끗해 지는 일은 없다. 혐오장사치들에게서 벗어나, 스스로를 더 정결하게 돌보면 어떨까.

김응교 선생님의 글을 덧붙인다.

사마리아인이란 앗시리아가 북이스라엘을 정복하고 자신의 백성들을 그곳에 정착시켰을 때 이들과 이스라엘 사이의 혼합결혼으로 태어난 ‘튀기’(혼혈아)를 말한다. 순수한 혈통인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업신여겨 사마리아 영토를 통과하지 않고 먼 거리를 우회하여 다녔다고 하지만, 예수는 달랐다. 물 길러 나온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했던 예수는 율법 교사들이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영생이 무엇인지 물을 때 사마리아인 얘기를 한다… “선생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네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 김응교,『문학과 숨은 신 그늘』, 8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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