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계시]

[기묘한 생각]신학 공부 적당히 하고, 그 시간에 기도를 해라?

 

 

신학 공부는 적당히 하고, 그 시간에 기도를 해라? – 이성은 한계가 있으므로 기도를 멈추어서는 안된다.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것은 인간의 교만이다. – 그러나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믿는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믿는 분은 어떤 분인가? – 어떤 분인지 설명하려는 순간 신학을 사용하게 된다. – 신앙을 하자니 신학이 필요하다. – 신학만 하자니 이성의 한계에 부딪치고 인간 교만에 빠지게 된다. – 두 손으로 두 작업을 해야한다. – 한 손으론 신앙을, 한 손으로는 신학을. – 신학하는 만큼 기도하고, 기도하는만큼 신학 공부 하자.

바르트는 교회와 신학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1.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교회의 이야기가 그 본래의 근원과 대상에 비추어 타당한가를 검증함으로써 “교회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2.하나님에 관한 교회의 이야기는 결함ㅇ르 지니고 있는 “인간의 사역”으로, “은혜에 대한 복종”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킴으로써 “신학은 교회의 이야기를 인도한다.”

3.하나님게 관한 신학 자체의 이야기도 인간적인 것이며, 이 이야기와 함께 교회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는 동시에 교회에 주어진 약속으로부터 산다는 점에서 “신학은 교회를 동반한다.”

– 김균진, 『현대신학사상』, 52

신학 그리고 신앙.003

아무리 유치하고 초보적인 믿음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는 믿음의 내용 곧 진리에 대한 이해가 담겨 있다. 그러나 믿음은 더 분명한 이해와 인식을 얻고자 한다. “이해를 추구하는 것은 믿음 속에 내재한다.” 믿음 속에 이미 내포되어 있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는 여기에 “신학의 필연성” 내지 신학의 과제가 있다. – 김균진, 『현대 신학사상』,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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