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큐티]

[기묘한 큐티]요한복음 2:23-25 예수는 사람의 마음속을 아신다

요2 23-25

2:23-25

예수는 사람의 마음속을 아신다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유월절

  • *유월절은 고대 이스라엘에 있어 중요한 제의였다. 유월절은 하나님이 애굽을 두루 다니시며 모든 장자를 죽이신 것을 기록한 출애굽기에 근거한다. 어린양의 피를 그들의 문지방에 바른 자들만이 “유월되었다”(출12:12-13).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날 어린양을 죽여 피를 문지방에 바르고, 남은 고기로 유월절 식사를 만들어야 했다…동일한 법이 신명기 16장 5-7절에도 주어져 있다. 표면적으로 이 둘이 서로 일치한다. – 피터 엔즈, 『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서영감설』, 127
  • *모든 유대 명절은 의미로 가득 차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유월절은 가장 뜻깊은 명절입니다. 유월절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출애굽 이야기를 극적으로 다시 전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하여 당시의 모든 사람에게 언제 이교도 독재자가 엎드리게 되고, 언제 이스라엘이 해방되었으며, 언제 하나님이 강력하게 행동하셔서 자신의 백성들을 구하셨는지를 되새기게 해주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유월절을 지키는 일은 언제나 하나님이 다시 그렇게 하실 것이라는 소망을 전해 줍니다.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해석된 행동으로 주어진 유월절에 대한 예수의 신선한 이해는 그 미래가 즉각적으로 현재 속으로 도래할 것을 말해 주었습니다. – 톰 라이트, 『톰 라이트와 함께하는 기독교 여행』, 168

표적

  • *하나님의 권능의 팔, 그 시온을 구원하시는 깃발과 표적은 바로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입니다. 어린양의 보혈이 바로 표적입니다. 이것은 유다만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 열방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표적입니다. 그것이 베들레헴의 장막에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이유였습니다. /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12:13) – 김우현, 『그의 길을 따르다』, 91
  •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저술 목적이 분명하게 서술되고 있다는 점(20:30-31)에서 특이하다. 요한복음은 표적과 강론을 통해 예수가 유대의 메시아, 즉 구약을 성취하신 약속된 구원자이심을 보여 주며, 또한 하나님 아버지와 동일하신 하나님의 아들(10:30)로 제시함으로써 그 분을 믿어 구원(영생을 가짐, 얻음)에 이르도록, 빛 가운데 거하도록 장려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의 중심 주제는 ‘믿음’이 확실하다. – 『두란노HOW주석 요한복음』, 11

의탁

  • *만장이 말했다. “선비가 제후에게 의탁하지 않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한다. 제후가 자기 나라를 잃어버린 뒤에, 다른 제후에게 의탁함은 예에 맞지만, 선비가 제후에게 의탁함은 예에 맞지 않는 것이다.” – 동양고전연구회 역주『맹자』359
  • *신뢰-믿음은 그리스도교적 삶을 시작하게 할 뿐만 아니라 지속하게 하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자기 자신을 내맡기지 않는다(그는 다른 존재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또 자신을 다른 존재에게 의탁한다는 의미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만일  그가 자기 자신을 내맡긴다면 하느님이 아닐 것이다. – 찰스 K. 바레트,『국제성서주석 고린토전서』, 358

전지

  • *요나는 사흘 밤낮 동안 커다란 물고기 뱃속에 있었고, 그 후에 육지에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니느웨로 향했다. 예수님 역시 죽으신 후에 사흘 낮밤을 무덤 속에 계셨다. 그리고 죽음에서 일어나셨고 부활하셨다. – 『그림으로 보는 핵심 성경』, 200
  • *인간은 왜 신에 대한 믿음이 필요할까? 전지전능한 신의 도움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좀 더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삶을 영위하기 위함일 것이다. / 붓다는 길흉화복과 행복을 관장하는 전지전능한 인격신으로서의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 이외의 천상 세계의 다양한 신들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들은 인간보다 좀 더 수승한 힘을 가진 존재일 뿐, 자신들의 업에 따라 생사윤회를 하는 중생이다. – 『인생교과서 붓다』, 323
  • *절대군주의 지상에서의 전지전능함은 자기의 권력을 시위하는 과정에서 뚜렷이 드러났다. 그 하나가 군대의 스포츠였다. 군주가 일단 손에 넣은 권력은 당당한 군대를 통해서 손바닥 위에 있는 것처럼 드러낼 수 있었다. 지상에서의 전지전능함은 대개 그러한 방법이라야 시위를 할 수 있었으므로 가장 미약한 군주조차도 “군대”를 갖추고 있었다. 그 경우 군국주의는 대개 장식이나 장난감에 불과했다. – 에두아르트 푹스,『풍속의 역사I 풍속과 사회』,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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