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큐티]

[기묘한 큐티]요한복음 1:29-34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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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34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것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비둘기 같이

  •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이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 마10:16
  • *깔뱅(칼빈)은 『요한복음 주석』(1553)에서 요단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에 대해서 취급하고 있다.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는 말씀은 문자적인 표현이 아니라, 비유적인 표현이다. 어떤 눈을 가지고 요한이 성령을 볼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비둘기 같다는 말은 성령의 현존(임재)에 대한 분명하고도 오류가 없는 표징이다. 비둘기는 비유적으로 성령으로 불린다. 비둘기 자체가 성령이라는 말이 아니라, 비둘기라는 말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 속에서 성령을 보여준다.” – 최윤배, 『깔뱅신학 입문』, 229
  • *‘내주’, 곧 쉐히나는 역사 안에서의 창조, 보존, 자유, 구원의 목표이다. /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에 대한 신약성서의 표현 안에서도 하나님의 내주는 끊임없이 관찰되고 있는 모티브이다. 성령은 예수 위에 임하시고 그 안에 거하신다. “요한이 또 증언하여 말하였다. ‘나는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이분 위에 머무는 것을 보았습니다.’”(요1:32) 말씀이 육신이 되셨고 우리 안에 거하신다.(요1:14) 낮아지고 고양되신 그리스도 안에 신성의 전적인 충만함이 실제적으로 생생하게 거하신다. “그리스도 안에 온갖 충만한 신성이 몸이 되어 머물고 계십니다.”(골2:9) 성령은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거하신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의 성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고전6:19)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거처이다. – 몰트만, 『희망의 윤리』, 270
  • *성령의 강림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보증하며, 그리스도의 사역을 돕기 위한 것이다. 특히 성령이 ‘불의 혀’(행2:3)로 상징된 것과는 달리 예수의 수세 시에 비둘기로 상징되어 강림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1.죄에 대해서 순결하신 그리스도의 본성(마10:16; 히4:15), 2.온유하신 그리스도의 성품(11:29), 3.하나님의 사랑과 총애를 받으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아1:15; 마3:17; 막1:11; 눅3:22) 등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 임한 성령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세례 요한이 눈으로 볼 수 있게끔 임하였음이 분명하다(33, 34절). – 『호크마 종합주석 요한복음』중에서
  • *비둘기같이(호세이 페리스테란) – 여기에 사용된 직유법은 성령과 비둘기를 명백히 관련시킨다. 즉 이 말은 성령 강림의 방식이 비둘기 같다는 뜻도 되고, 성령이 비둘기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는 뜻일 수도 있다. 누가복음에는 후자의 견해를 강조하기라도 하듯 ‘형체로’(소마티코에이데이)가 첨가되어 있다. 한편 성령에 관하여 이와 같은 유추적 표현이 나오는 구약성경은 창1:2뿐이다. 탈무드에는 창1:2이 ‘하나님의 신은 비둘이 같이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로 해석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어느 합리주의자는 비둘기 한 마리가 예수의 머리 위에 날개치고 있었다고 한다. 여하튼 이것이 환상적 장면이든 아니든 분명 성령이 신인(God-Man)이신 메시야로서의 사역을 수행하도록 돕기 위해 예수 위에 임하신 것이다. 즉 예수께서는 당신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성령의 적극적이고도 완전한 후원을 받으신 것이다. 이러한 점에 대해 웨스트코트(Westcott)는 ‘예수의 참 인간으로써 합당한 은사인 성령을 받으심으로 공생애의 첫 발을 내딛으셨다. 주관적으로 볼 때 신인을 연합시킨 성령이 육화하신 말씀(예수)위에 임하셨고, 객관적으로 볼 때 그 성령으로 인해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계시되셨다’고 설명하고 있다(Pulpit Commentary). 한편 성경 문학적으로 비둘기는 성령의 교통하는 힘의 온유(11:29)와 순결(1:16)과 생명의 충만(창1:2; 요7:37-39)을 상징하는데, 이것들은 예수의 품성과 사역의 특질과 좋은 비교가 되고 있다. – 『호크마 종합주석 마태복음』마3:16 중에서
  • *로이드 존스는 우리 자신들이나 자유주의자들, 혹은 현대주의자들이 종종 성령의 인격을 망각하는 오류에 빠진다고 주장한다…그러한 이유는 첫째. 성령께서 산출하시는 은혜를 비인격적인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며, 둘째. 성령에 대한 이름이나 칭호가 그러한 생각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셋째로는 그분을 가리키는 상징들 자체에서 이런 생각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다…로이드 존스는 에베소서 4:30의 말씀을 언급하면서 그 말씀 안에서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 있기 때문에 성령의 교리 중 그분의 인격성을 강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지적하며, 더 나아가 로이드 존스는 삼위일체적인 성령 이해를 통해서 성령을 단순히 우리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어떤 세력이나 능력 정도로 여겨서는 안 되며 성령을 인격을 지니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으로 인식해야 함을 주장한다.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이 인격이시라면 당연히 성령하나님도 인격이신 것이다. – 정진영, ‘성령론 논쟁에 관한 연구-로이드 존스 성령세례를 중심으로’, 34 (2008년 신학석사논문, 장신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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