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큐티]

[기묘한 큐티]요한복음 1:19-28 세례 요한의 증언 2

요1 19-28 2

 

1:19-28

세례 요한의 증언( 3:1-12;  1:7-8;  3:15-17)

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21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묻되 네가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22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24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25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섰으니

27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28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요단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세례 요한

  • *세례 요한파 – 세례요한을 중심으로 형성된 종말론적 회개운동그룹. 요한의 사후에 신앙공동체로 발전. 한 동안 기독교와 라이벌 관계. 후에 일부가 기독교에 흡수됨. 예수의 일부 제자들이 여기서 옴(요1:37; 행19:3). – 성종현, 『공관복음서 대조연구』, 305
  • *세례 요한의 세례는 에세네파의 입회 의식과 비슷했지만, 죄 씻음이라는 상징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브로커 체제로 변질된 성전에 절망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왔다. 그는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람들을 보며 마치 천둥치듯 말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닥쳐올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주더냐?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어라. ..” – 『인생교과서 예수』,  408
  • *함석헌 선생은 일찍이 제도권에 동화되기를 거부하면서 자기 지조와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들사람’이라 일렀다. 그들은 부와 권력을 멀리하면서 정신의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이었다. 역사는 이런 이들에 의해 조금이나마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 『인생교과서 예수』, 407
  • *예수도 이 들사람에게 매혹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에게 나아가 세례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성정이 불같고 말함에 거침이 없던 세례요한의 길은 오랜 시련으로 혼곤해진 그 시대 사람들에게 울려 퍼진 죽비소리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겸허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속으로 ‘그가 그리스도가 아닐까’하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 생각을 단칼에 도려내듯 명확하게 말했다 – 인생교과서 예수 409
  • *여기서 세례 요한과 사도 요한의 차이가 생겨납니다. 세례 요한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세례 요한은 사도 요한이 체험한 그리스도나 성령에 대한 경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메시아라고만 증거합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의 증언은 다릅니다. / 사도 요한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그에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을 보았습니다. – 이연길,『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요한복음』, 31
  • *예수의 길은 세례요한의 길과 달랐다. 그들이 머물고 있던 공간 자체가 그 차이를 보여준다. 세례요한의 공간은 광야였다. 하나님 외의 것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절연의 공간 말이다. 하지만 예수의 삶의 공간은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 예수는 매일의 양식을 얻기 위해 고투하고 있는 민초들의 눈물겨운 삶을 눈여겨보았다 – 『인생교과서 예수』, 410

세례

  • *불트만 같은 비판적인 주석자들도 세례 없는 교회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세례 없는 교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다. 초대교회에서는 예수의 부활 이후 세례가 베풀어졌다. 예수의 제자들이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고, 다른 사도들, 특히 바울이 회심한 뒤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사도가 세례에 관해 전하는 내용은 그리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 그러나 바울의 증언은 대단히 소중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바울은 56년 초나 55년 또는 54년에 에베소에서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3)” – 한스 큉,『교회』, 289
  • *세례의 사상이나 사역은 일찍이 구약의 유대 민족의 종교 생활 가운데 이미 존재하였는데, 물을 사용해서 하나님 앞에 깨끗함을 보이고 제단을 쌓거나 하나님을 향하여 나오는 무리들이 물로 씻는 의식을 거친 후 새로운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종교적 행사를 치루었다. 이와 같은 유대 민족의 원시적 세례 형태는 다음 몇 가지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1.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나 거룩한 예전에 참여할 때는 반드시 물로 깨끗이 씻는 의식을 가졌다. 2.쿰란 공동체에서 가졌던 세례 의식을 들 수 있다. 3.유대교로 개종하는 이방인들에게 주었던 세례를 들 수 있다. 4.세례 요한의 사역을 통하여 기독교 세례의 근원을 찾아볼 수 있다. – 정장복, 『예배학개론』, 210-213
  • *예수의 사명은 세례 요한의 세례와 더불어 개시된다. 조지프 켐벨 등의 신화학자들은 이 스토리 이면에 놓은 고대의 신화적 의미를 발견한다. 캠벨은 이렇게 썼다. 세례 의식은 고대 수메르의 신전 도시인 에리두에서 유래한 고대 의식이었다. ‘물의 집의 신’인 에아 Ea 의 의식이었던 것이다. 헬레니즘 시대에 에아는 오아네스 Oannes 라고 불렸다. 오아네스가 그리스어로는 이오아네스 Ioannes, 라틴어로는 요하네스 Johannes, 헤브라이어로는 요하난 Yohanan, 영어로는 존 John(우리 말로는 요한)이다. 그래서 여러 학자들은 요한이나 예수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만 물의 신과 태양의 신이 있었을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서티모시 프리크, 피터 갠디 공저『예수는 신화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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