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생각]

[기묘한 책] 인문학의 역습 ; 실패하는 혁명이여, 지식과 열광을 발산하라 – 사사키 아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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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 걸음을 멈추고 | 사사키 아타루 지음 | 김소운 옮김 | 여문책 | 292쪽 | 17,800원
인문학의 역습 ; 실패하는 혁명이여, 지식과 열광을 발산하라

– 인문학의 역습이라는 제목은 옳지 않습니다. 대학과 인문지는 원래 적대 관계에 있으니까요.

– 이 아름다운 옛날의 대학은 사라졌고, 결코 회복해서는 안됩니다.

– 인문학부라는 표현 자체가 20세기 이후에 날조된 것입니다.

– 중세 볼로냐에서, 파리에서, 옥스퍼드에서 대학이 탄생했다는 기술은 도무지 수긍할 수가 없습니다.

– 일단 13세기 초에 중세 유럽에 대학이 탄생합니다.

– 교양학부에 과도한 기대를 갖는 사람이 있습니다…각종 학과들이 대학개혁이라는 기치 아래 우후죽순으로 난립합니다. 역시 중세 초기처럼 무지몽매한 인간이 스스로 조악한 모조품을 대량으로 축소 재생산한 것이죠. 별것 아닙니다. 실로 중세대학은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창설되었습니다.

– 실체가 무엇인가 하면 학생조합입니다.

– 13세기 중세대학이 주춧돌을 놓게 된 것에는 뚜렷한 배경이 있습니다…’12세기 혁명’…

– 12세기에 유럽은 드디어 각성합니다…특히 주목할 것은 『로마법대전』의 발견입니다.

– 그럼 그 결과로 탄생한 중세대학은 어떠했을까요. 당연히 학생들 대부분은 젊은 나이에 고향을 떠나왔는지라 대체로 취해 있었습니다. (웃음)

– 그야말로 영리한 불량배지요. 그들이 몸소 일궈낸, 보이지 않는 대학의 빛나는 승리입니다.

– 다시말해 자유로운 학문을 추구하고, 국경을 초월해서 편력하며, 머리 좋고 싸움도 잘하는, 고약하지만 상당히 멋진 녀석들입니다.

– 교수는 여러분 같은 학생, 청강생에게 위협을 받았습니다.

– 교수가 거리 밖으로 못 나오도록 감시를 붙입니다…그렇게 좋은 것이었을까요. 아벨라르 같은 위대한 학자와 학생들의 결속은 아름다웠지요. 필시 예외라고 할 만 하지만.

– 그런 경제적인 기반이 있었기에 중세의 대학이 성립했다는 말입니다.

– 다시 말해 대학의 자치에 무지했기에 교황이나 대주교가 하는 말에 순종합니다. 이리하여 대학의 자치는 그 즉시 흔들리고 맙니다.

– 요컨대 대학의 자치라는 것은 현실에서는 그야말로 일순간밖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교권에 허가를 받고, 그 교권 때문에 깨져버렸습니다.

– 먼저 중세대학이 획득한 대학의 자치와는 무관했을 살라망카 대학을 중심으로 후기 스콜라철학이 활짝 꽃핀 것은 특필할 만하지요.

– 대학도 경직화해서 중세대학의 정체가 시작됩니다. 가령 이미 13세기에 단테가 나타나서 토스카나어로 『신곡』을 썼건만 대학은 여전히 속어의 사용을 부정합니다. 또한 계속해서 역사학을 경멸합니다.

– 그 이후에 발전한 과학은 절대 인정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12세기의 변혁의 여파가 두절된 탓에 15세기에 이르는 동안 교회는 갈수록 부패합니다…그런데 대학은 그때 무엇을 했을까요. 하기야 대학의 자치는 교권에 주어진 것이니 저항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지요. 실상은 그러했습니다.

– 거듭 말하지만 인문지와 대학은 뜻이 맞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출판인쇄기술의 확대와 더불어 대학 밖에서 자신들의 사상을 말합니다.

– 언제나 수단은 같습니다. 항상 회귀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새로운 것’의 개시를 고합니다.

– 인문주의자에 의한 인문지의 비판으로 교권에 의거한 대학과 그 지식은 크게 흔들립니다.

– 절대주의 국가는 대학이 아닌, 기존과 다른 새로운 고등교육기관을 만듭니다. ‘아카데미’를.

– 몰락 일변도를 걷던 대학은 이제 숨이 간당간당합니다. 나티오, 동향단도 소멸의 길을 걷게 됩니다. 관료의 인사권이라는 형태로 취직자리도 국가가 장악합니다.

– 17세기부터 18세기의 위대한 지식인 가운데 대학교수가 아니었던 인물을 열거할까요.

– 18세기 계몽주의자들은 대학을 경멸합니다. 그리고 18세기 특히 독일 개신교권에서 ‘대학개혁’이 이루어집니다. 하도 같잖아서 18세기부터 했다니까요.

– 프랑스혁명이 발발하자 1793년 9월 15일 국민공회에서 어떤 의결을 합니다. 프랑스 전역에서 대학을 폐지한다는 의결을,

– 프로이센은 이 위기 속에서 교육의 근대화를 모색합니다. 그래서 빌헬름 폰 훔볼트라는 언어학자이자 정치가인 철학자에게 베를린대학을 창설하게 합니다.

– 훔볼트가 지향한 교육은 한 마디로 일반 인간교육allgemeine menschenbildung입니다.

– 이 ‘멘슨빌둥menschenbildung’의 ‘Bildung’이라는 말도 꽤나 골치아파서 교양, 도야, 교육, 형성 등 다양하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 훔볼트가 일반 인간교육과 함께 내세운 또 다른 하나는 연구중심주의입니다. 즉 대학의 교육자는 연구자여야만 합니다.

– 낡은 폐습은 무엇이었을까요? 맞습니다. 대학은 속권과 교권에 지배당하고 있었습니다. 앞날이 어땠을지 금방 예상이 되시죠. 교수직이 세습됩니다.

– 훔볼트 이념은 그것 자체가 일종의 ‘엄숙한 줄타기’입니다. 국가에 의존하고, 국가에 유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만 국가로부터의 ‘고독과 자유’가 필요하다는 논리가 나옵니다.

– 줄타기긴 해도 분명 고매한 이념과 강한 영향력을 가진 새로운 고등교육기관의 성립이었습니다

– 프랑스혁명을 실패로 치고 없었던 일로 치부하며 그 이전의 유럽을 회복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빈 체제에 저항해서 1848년 혁명이 일어납니다…그래서 대학인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 유명한 소수의 철학자가 갖고 있는 자유사상에 강하게 공명하며 지지합니다. 그러나 거의 대다수의 보수적인 대학인은 침묵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 그런데 그 후계자들이 어째서 이 모양일까요. 다시금 심하게 부패합니다. 조상의 업적 덕에 그토록 복록을 누리면서 그것을 기득권 삼아.

– 그들만의 기득권이 되고 맙니다. 그보다 낮은 계급이 대학에 오는 이유는 역시 취직이므로 대학은 직업학교로 변해버립니다.

– 그리고 지금 비상근 강사 문제가 거론되고 있지요…그런데 이것도 실은 독일에 선례가 있습니다

– 그리고 결정적인 파멸이 찾아옵니다. 정권을 쥐기 훨씬 전인 1920년대 말의 일입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패배입니까. 물론 여기 일본도 사정은 같습니다. 반복하겠습니다. 대학 따위 죽으면 그만입니다.

– 하스미 시게히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 도쿄대학 총장이지요.

– 이 19세기적인 근대대학이 얼마나 급속도로 체제에 굴복하고 타락했는지, 그리고 나치에, 파시즘에 얼마나 어이없게 굴복했는지 우리는 똑똑히 봤으니까요. 이 역사적인 사실에 관한 유보도 없이, 아무런 대책도 궁리하지 않은 채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뼛속까지 길들여져 있다는 말입니다.

– 그러나 상위 학부는 실은 그것 자체로 독립된 것이아닌, 어떤 것의 아래에 있어서 복종하게 된 것이 분명합니다.

– 즉 ‘진리’가 아니라 국가가 요구하는 ‘유용성’에 따라야만 합니다.

– 그는 특히 법학자와 신학자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 철학자는 오로지 진리만을 말합니다. 따라서 행복에 관해 오직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정직하게 생활할 것. 어떤 불법행위도 하지 말 것. 향락은 절제하고, 병은 견뎌낼 것.”

– 자신이 옳다면 행복과 성공은 나중 문제라고 생각한 사람이거든요.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행복해지는 것’, ‘성공하는 것’이 으뜸가는 목표인 사람은 선에 대한 이념이 없다는 말입니다.

– 아니 칸트만이 아닙니다. 철학자인 사람은 응당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찮은 처세훈을 쏟아내며 사행심을 부추기는 인간은 철학자가 아닙니다.

– 뻔뻔스러운 학자는 자신이 이런한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선전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학설의 마술적인 힘을 미신으로서 믿습니다. 이런 학자를 믿으면 이성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즉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됩니다. 칸트는 상위학부의 학자 중에 이런 인간이 있다고 꼬집은 것입니다.

– 많은 점에서 대립한다고 볼 수 있는 피에르 르장드르와 질 들뢰즈가 공통적으로 ‘경영관리’를 통렬히 비판하고, 미셸 푸코가 가장 말년에 했던 강의에서 일찌감치 신자유주의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비판한 의미를 생각해보세요. 이러한 유행에 희희낙락하며 자진해서 뒤어들어 ‘사는 방법’인지 뭔지를 설명하는 자칭 철학자마저 있으니까요. 이것이 ‘상급학자’의 실체입니다.

– 이성에 입각하지 않은 유용성이나 권위 혹은 사람들의 사행심을 부추기는 마술적인 속임수 등에 철학은 어떻게 대처할까요. 투쟁입니다. 이 “논쟁은 결코 종료할 수 없으며”, “철학은 상시 논쟁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 칸트에 의하면 철학자와 철학부는 원래 ‘투쟁을 멈추지 않는 지식의 좌익’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언젠가 하위학부가 상위학부를 대신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 “우리는 지금 ‘재기발랄한geistreich 국민의 혁명’-프랑스혁명을 말합니다-이 발생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 혁명이 ‘성공하든 실패하든'(필자가 강조) ‘이 혁명이 비참하고 잔학한 행위로 가득하다고 해도 나는 말한다. 이 혁명은 모든 관찰자의 마음속에’ ‘열광Enthusiasmus’과 ‘소망하는 공감’을 낳는다.”

– “열광은 격정Affekt과 함께하는 선의 이념이며, 이러한 마음의 상태는 숭고하다. 열광 없이는 위대한 것은 무엇하나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 “혁명가들에게 반대했던 자들은 금전 보상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혁명가의 마음에 순수한 법 개념을 낳은 위대한 열정과 영혼에 필적할 만큼 정신을 고취시킬 수 있는 것은 없었던 것이다”라고. 그리고 “이러한 인류는 아주 보편적이고 이타적인 공감 때문에 환호성을 지르며 성공을 향해 시도한다. 이는 혁명의 한 현상이 아니라 자연법적 헌정체제의 진화현상이다.”

– 혁명이 낳는 이 열광은 인류가 정당한 법을 향해 진화하고 있다는 징조이며, 그 도래할 법과 체제는 결코 전쟁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 “그 사건은 참으로 중대해서 인류가 지대한 관심을 가지며, 어떤 계기로 적절한 상황들을 일으켰을 때 전 세계에 영향을 주고 다양한 민족들에게 이러한 방식의 새로운 시도들을 반복하도록 환기시킬 것이다.”

– “이와 같이 그 의도된 헌정체제는 인류에게 중요한 사건이므로 기필코 언젠가 빈번한 경험을 통한 교훈이 모두의 마음속에 확고하게 자리 잡아 작용을 미친다.”

– 선에, 영원한 평화에 이르는 이념으로서의 열광, 그 공감은 망각할 수가 없으며, 기필코 만인의 마음 속에 작용을 미친다. 옳은 일이므로. 실패한다 해도.
– 지금 우리는 열광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칸트적 열광의 시대를.

– 결론입니다. 대학도, 인문지도, 교양학과도 필요치 않습니다. 그것들을 연관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정동을 수반하는 선의 이념, 영원한 평화의 이념에 열광하는 지식집단이 일부 인간의 이익이 아니라 세계공민을 위해 이성을 사용하는 자가 모이는 칸트적 대학이 필요합니다.

– 기억합시다. 이 열광에 대해 칸트가 이미 『판단력 비판』에서 정의했다는 것을. 근대미학의 주춧돌을 놓고, 모든 예술에 관한 사유가 한 번은 합류하는 거대한 호수 같은 이 책은 여전히 현대예술을 조망하는 투철한 식견으로 넘쳐납니다. 그 책에서 열광을 말했습니다. 철학부에는 예술도 속하지 않느냐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 피에르 르장드르가 말합니다. 경영관리가 아무리 발호하려해도 “결코 우리가 예술을 맞이하기 위해 지핀 불을 꺼뜨리지는 않는다.”

– 혁명과 대학의 운명은 항상 반드시 관련되어 있으며 혁명은 대학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대학이 새롭게 태어날 때에는 항상 혁명이 선행합니다.

– 칸트가 되든가, 그렇지 않으면 혁명입니다.

– ‘하얀 장미 저항운동’. 그들이 목숨 걸고 뿌린 소책자를 읽어드리겠습니다.

– “그들이 잔인무도한 범죄에 맞서 언제든지 저항할 수 있음에도 저항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죄 없이 죽어가는 수십만 명의 희생자들에게 일말의 연민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들이 깊은 잠에 바져 있다는 증거가 더욱 분명해질 것입니다…이 정부를 참아내기만 했으니까요. 이렇게 저열한 정부가 이 땅 위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독일인들 모두의 공동 책임이 아닌가요?…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입니다. 독일인이라면 누구나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죄를!…짐승보다 못한 독재자를 제거하는 것이 모든 독일인의 유일하고도 지고한 의무이자 가장 신성한 과제입니다.”

– “대체 어째서 이런 짓을 했나?”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누구든 결국 시작해야 할 일이었다.”

– 이상입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4년 가을, 교토세이카대학 인문학부 재편 기념 강연회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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