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기타

어쩌면 글을 잘 쓰게 될지도 몰라(16)

Day16 자신의 몸을 관찰해보세요. 

“그 부위들은 어떻게 보이나요? 그리고 어떻게 보였으면 하나요?”(62)

 

내 옆구리에는 큼지막한 백점이 하나 있다. 아, 착각은 하지 말자. 여기서 백점이란 “문제를 다 맞추었다”는 뜻의 백점이 아니라 피부가 주변보다 허옇게 침착된 흰색 점을 가리키는 말이니. 재밌게도 그 크기가 2인치는 되는지라, 그것을 처음 보던 아내는 놀란 코끼리 눈을 했었다. 꼭 예수가 찔렸을 것만 같은. 옆구리의 그 자리에 이것은 무엇이냐. 도대체 무슨 흔적이냐. 했을 터이다.

어쩌다 생긴 걸까.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어릴 적 목욕탕에서 만들었다는 것인데. 제법 순수했던 시절 나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종종 목욕탕에 가곤 했다. 여탕에 가기엔 고추가 너무 영글고, 그렇다고 남탕에 혼자 보내기엔 뭔가 찝찝했던 나이 어느 즈음. 어머니는 ‘때밀이 아저씨’에게 전해줄 5,000원을 내 손에 쥐어주곤 남탕으로 날 들여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용한 지혜가 내게 임했다. 아, 내 손으로 내 몸을 밀고 나면 이 5,000원은 오롯이 내 것이 아닌가. 당장에 300원을 주고 이태리타올 한 장을 샀다. 스스로를 무척 대견해하면서. 탕에 들어간 지 십 여분. 내 손은 김종태 여사만큼이나 쭈글쭈글해졌다. 퉁퉁 불은 몸을 빼내어 옆구리부터 슥슥 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러다 만 것이다. 내 몸을 살뜰히 쓸어낼 방법도, 기술도, 끈기도 당시 나는 알지 못했다. 그저 옆구리, 그 자리만 냅다 비벼대다 만 것이다.

그 뒤로 그 자리가 변색됐는지 뽀얗게 점이 되어버렸다. 단돈 5,000원 때문에,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4,700원에 일평생 지우지 못할 넓적한 점을 새겨버린 것이다. 십 수 년이 지난 언젠가. 목욕탕에 가서 기필코 이 점을 지워보겠노라고, 그 주변을 미친 듯이 밀어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전의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돌아와보니 벌겋게 피멍만 들었을 뿐, 백점은 이미 내가 되어 있었다.

원하든 원치 않든, 나는 살아가는 누구나 제 몸에 흔적을 남기며 살아간다고 믿는다. 그 흔적 하나하나엔 남이 대신할 수 없는 자신만의 생이 있고, 추억이 있고, 또 아픔이 있다. 만약 그것을 깨끗이 없애 버릴 수 없다면. 차라리 그것과 함께 사는 법을 택하라고 난 말하고 싶다. 그것은 이미 나의 일부이기에 제거하거나 지워버려야 할 무엇이라기보단 내가 나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일종의 신분증이라 여기며.

어쩌면 부활한 예수의 몸에 여전히 상흔이 있었던 것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 싶다. 삶에 난 깊은 흔적은 지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새기는 것이라고. 그것이 나이고, 나를 만드는 것이라고. 그렇게 말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그 흔적 그대로 네가 되라 격려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오늘도 샤워를 하고 나와 물기를 닦으며 나는 옆구리를 본다. 아, 저리도 큼지막한 점이 내게 있구나. 내게 있겠구나.

Categories: 4. 기타

댓글 남기기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