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기타

어쩌면 글을 잘 쓰게 될지도 몰라(7)

Day7 감사의 편지를 써보세요. 

“원하는 것들에 대한 욕망에는 정지 버튼을 누르고, 감사하는 마음의 스위치를 켜는 거예요.”(33)

고맙다. 네 덕분에 서른하고도 세 해를 넉넉히 사람 구실하며 살았다. 만일 네가 없었다면 나란 인간, 애인이나 아내는 고사하고 친구도 제대로 못 사귀었겠지. 생각만해도 아찔해진다. 그러고보면 서로 얼굴 한 번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 그저 묵묵히 음습한 곳에서 내 허물 가리워주고, 또 속시끄런 내 사정 남 모르게 덮어주니 고맙다. 고마워.

2011년이었나. 갑자기 네가 불룩하고 존재감을 드러내었을 때가 생각나. 아마 너도 기억하겠지. 내가 별짓을 다해도 너의 결기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어. 바로 그 날, 난 처음으로 항외과라는 곳을 찾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었는데. 이제는 지나는 빌딩마다 ‘항’자만 들어가도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돼. 그 때 그 날의 네가 떠올라서.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너를 소개해달라더라. 그랬더니 대뜸 수술하자는 거야. 워낙 단호한 의사의 표정에 난 대꾸할 틈도 없었어. 그 자리에서 동의하고 수술실로 향했지. 맘에 준비도 없이 아랫도리가 횡한 채로 엎드려 있으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어. 더구나 그 자리엔 여간호사들도 있었거든. 아마도 네 생애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그 때 쏟아졌을 거야. 하지만 난 그 때가 생의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았어.

신멘 다케조와 아라레, 엔도 켄지와 닥터 덴마. 입원해있는 2박 3일 동안 꼬박 만난 친구들이야. 그들이 없었다면 통증에 몸부림만 쳤을 테지. 간간이 좌욕도 하며 잘 버티고 있었는데, 그 때가 오고 말았어. 수술 뒤 처음으로 다시 똥을 싸야 했을 때는 정말… 와… 눈치 없이 음식을 밀어 넣는 주둥이를 꼬매버리고 싶었다니까. 괜히 밥 갖다 주는 아주머니만 야려보았지 뭐야.

퇴원 뒤 잘 아물지 않아서 한 번의 재수술을 받고, 또 다시 후휴증으로 재입원을 해야 했던 것도 생각난다. 당시 연애하던 여자애는 민망했는지 문병을 단 한 번밖에 오질 않았어. 그게 지금까지 서운한 걸 보면 나도 참 웃긴 놈이야. 그렇지? 그런데 그 날 걔는 왜 던킨 도너츠를 사가지고 온 걸까? 그런 문병 선물은 듣도보도 못했어. 그러고보면 걔도 참 웃긴 년이다.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그 덕에 네가 참 고마운 친구라는 걸 알았어. 웃는데도, 앉고 서는데도, 심지어 재채기를 하는데도 네가 함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거든. 이런 나와 함께 하느라 힘들어서일까. 유독 주름진 너의 얼굴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하고, 안쓰럽다. 이제라도 반성하며 메마른 휴지가 아니라 물티슈를 들고 너를 만나러 갈게.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어. 어쩌면 그 주름의 깊이로 인하여, 주름이 패인 할머니 손 같은 그 마음으로 인하여 나는 오늘도 산다고. 그 덕분에 오늘도 산다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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