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단상

감기

가슴아픈 일들을 빨랫줄에 널어
돌아오지 않는 마음을 말려라
비겁했던 맘들을 빨랫줄에 널어
소용없는 마지막 눈물도 말려라
모두 잊겠지만 몸이 기억하여
이맘 때면 잠깐의 감기라도 나눠 앓아서
사랑했고 잊혀졌던
정말 사랑했고 이내 잊혀졌던 것에 노래를

– 권나무 <이천십사년사월> 중에서

감기에 걸렸다. 난 그제서야 평소 잊고 지냈던 내 몸의 실제와 상접한다. 오르내리는 체온이 알려주는 36.5도의 적절함. 흘러내리는 콧물이 주절대는 콧구멍의 소중함. 삐걱대는 삭신이 말해주는 뼈마디의 대견함. 감기에 걸려서야 다시금 깨닫게 되는 내 몸의 명백한 진리들이다.

이렇듯, 아파보지 않으면 제 몸의 소중함도 모르는 것이 사람이다. 하물며 아파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타인의 아픔을 헤아릴 수 있을까? 그래서 문화부장관을 지냈던 이어령도 이런 말을 남긴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감기 한 번 걸려본 일이 없는 사람과는 악수도 차 한 잔도, 그리고 대문의 빗장을 열어주는 일까지도 사절하지 않을 수 없다.”

아픔은 평소 잊어버리고 지내던 소중한 것들을 불러일으켜 준다. 그런 연유에서 너에게도 이따금 감기에 걸려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감기에 걸려서야 너는 너 자신의 소중함을, 그리고 타인의 아픔을 조금은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기에.

Categories: 2. 단상

1 reply »

댓글 남기기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