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약

허상이지만 실체와 다름없는 족쇄.

“국어사전에서 동사를 찾아보면 말이죠…….”

남자가 사전을 뒤적이는 내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공통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뭔지 아시겠습니까?”

뜬금없이 뭘 묻는 건가 싶어 나는 그저 멀거니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모두 ‘-다’로 끝난다는 겁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로 끝나죠.”

나는 그제야 남가자 뭘 묻는지 깨닫고 ‘난 또.’하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야…… ‘-다’가 기본형을 만드는 종결어미니 그럴 수밖에 없겠죠.”

“바로 그겁니다. 기본형. 그게 족쇄라는 거죠.”

“예?”

다시 남자를 쳐다보았을 때 남자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 차마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좋게 말하면 모든 우리말 동사의 기본형은 ‘-다’로 끝난다고 할 수 있지만, 달리 말하면 모두 ‘-다’라는 족쇄에 얽매였다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기본형이라는 족쇄. 하나만 묻겠습니다. 말하거나 글을 쓸 때 동사를 기본형 그대로 쓰는 경우가 얼마나 되죠?”

“그야…… 거의 없죠.”

“그렇죠. 그러니까 그 기본형이라는 건 말하자면 현실에는 없는 허상 같은 겁니다. 이제까지 그렇게 살아왔어요. 나 말입니다. 마치 나라는 사람의 기본형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런 건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실제의 나를 얽어매고 옭아매는 족쇄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은 겁니다.”

[동사의 맛]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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