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약

[기묘한 신학]신학은 해석이다. (푈만 [교의학] 1장 교의학의 생산적 기능)

1.신학은 신앙이다. (신학의 실존적 기능)

2.신학은 성경이다. (신학의 재생적 기능)

3.신학은 해석이다. (신학의 생산적 기능)

4.신학은 학문이다. (신학의 합리적 기능)

신학 특별히 교의학의 세 번째 기능은 생산 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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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보았다시피 오로지 재생, 반복하는 신학은 무비판적 모방만 반복할 뿐이다. 회계장부처럼 서술을 길게 늘어뜰일 뿐이다.

재생적 6

반면에 새롭게 표현하기만을 원하는 신학은 만능이지만 아마추어이며, 더 심각하게는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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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신학은 특히 교의학(조직신학)은 성경의 진술을 모으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것들을 하나의 모자이크로 새롭게 표현하는 해석학적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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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트하우스에 따르면 복음은 교회사를 통해 시간적으로 전진하고, 선교를 통해 공간적으로 전진한다. “기독교의 진리”는 교의학에 의해 “초기의 형태로부터 새로운 형태로 변형”되어야 한다. “조직신학”은 “기독교 진리를 오늘날 우리와 관련되는 타당성 속에서 철저히 해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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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너는 조금 다르게 표현한다. 교의학은 우리 시대의 언어로 “성서를 옮기는” 과제가 있다. 따라서 “논쟁술”, “곧, 교회의 메시지와 대립되는 당대의 교리와 이데올로기와 싸우는 기독교 신앙의 사상적 논쟁”을 전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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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벨링도 조금 다르게 표현하기를 시도한다. 그에 따르면 “조직신학의 과제는 전승된 신앙의 증언을 오늘날 응답해야 할 증언으로 숙고하는 것이다. 조직신학은 ‘과거에 그랬다’고 말하지 앟고, ‘지금 이렇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언어를 창조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슐라이어마허는 조직신학을 역사적 학문으로 여겼지만, 틸리히는 달랐다. 오히려 조직신학은 오늘날 우리의 상황에 적합하게 복음을 해석, 번역한다. 달리말해, 상황이 일으키는 질문, 사상의 질문에 대해 복음이 대답하게 한다. 그래서 “변증법적 신학”이며 “대답하는 신학”이다. 철학의 질문과 신학의 대답, 이 둘의 관계를 통해 신학하는 방법, 즉 “상관관계의 방법”으로 틸리히는 신학하기를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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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신학 특히 교의학(조직신학)은 세상과 무관하지 않다. 이 세상 안에서 복음은 결국 언제나 걸림돌일테지만 세상을 살리는 방식으로 걸림돌일테다. 그러므로 이 둘의 관계는 끓어질 수 없고 끊어져서도 안된다. 신학은 바로 이 끊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질문에 대답하는 복음이 되도록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야 한다. 미국의 흑인신학과 해방신학, 한국의 민중신학 등이 그 예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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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학은 신앙이다. (신학의 실존적 기능)

2.신학은 성경이다. (신학의 재생적 기능)

3.신학은 해석이다. (신학의 생산적 기능)

4.신학은 학문이다. (신학의 합리적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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