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약

[기묘한 신학]신학은 신앙이다. (푈만 [교의학] 1장 교의학의 실존적 기능)

1.신학은 신앙이다. (신학의 실존적 기능)

2.신학은 성경이다. (신학의 재생적 기능)

3.신학은 해석이다. (신학의 생산적 기능)

4.신학은 학문이다. (신학의 합리적 기능)
 

 

 

 

푈만은 신학 특히 교의학(조직신학)의 기능과 한계, 그리고 구조에 대해 다룬다.

교의학의 규범은 성서이다. 성서적 사고를 그대로 베낀다는 뜻이 아니라, 성서적 사고와 유사하게 그 원형을 따른다는 뜻이다.

교의학의 기능은 네 가지이다. 즉 실존 기능, 재생 기능, 생산 기능, 합리 기능이다.

실존적 1

첫번째로 교의학의 실존 기능이다.

실존적 2

브루너에 따르면 “교의학적 사고는 단지 신앙에 관한 사고만이 아니라 신앙하는 사고다.”

실존적 3

페르디난트 에브너도 이와 비슷하게 주장한다. “우리는 하나님에 관해 언제나 2인칭으로 사고한다.”  ‘나와 그’가 아니라 ‘나와 너(당신)’으로 대화를 통해 하나님을 추구한다는 말이다.

실존적 4

칼 바르트에 따르면 교의학은 “오직 신앙의 행위로써만 가능하고, 기도의 태도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실존적 5

그러므로 틸리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록 사상적으로 순수하고 정통적이며 루터처럼 뛰어난 지식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영적인 인간이 되기를 중지하는 자는 자연히 그릇된 신학을 수행한다.”

실존적 6

찬양이 아닌 신학은 종교학일 따름이다.

실존적 7

특히 실존적 신학을 강조한 불트만은 이 기능을 역설했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에 관해 말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실존적 8

틸리히도 마찬가지로 강조했다. “무조건 우리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우리의 존재와 비존재에 관해 결정하는 대상을 다루는 문장만이 신학적이다.”

실존적 9

이 실존성은 학문성과 같은 시소를 탄다. 실존성으로 인해 학문성이, 학문성으로 인해 실존성이 희생되기 쉽기 때문이다.

실존성을 잃어버리고 오로지 학문성만을 추구하는 신학은 잘못된 것이다. 이는 순전히 기술적이고 중립적 신학이 될 수 밖에 없고, 학문일 수는 있어서 신학일 수는 없다.

실존적 11

만약 학문의 본질이 중립성이나 무전제성이라면, 신학은 학문이기를 포기한다. 신학은 신앙에서부터 출발하고,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학문보다 우선한다.

그렇다고 학문성을 놓아두고 실존성만을 붙든다면 무절제한 영광주의나 영지주의적 신비주의에 빠질 수 밖에 없다. 4번째 기능인 합리성은 나중에 더 알아보기로 한다.

실존적 12

결론적으로 신학은 실존성을 잃으면 안된다. 헤를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독교 신앙은 자신의 내용과 실천에 대한 사상적 책임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삶 전체를 요구한다.”

실존적 13

성서를 보자. 고전3:21-23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리스도인에게 속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실존적 14

또 고전7:29 이하를 보라.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비판적인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 신앙은 무비판적이지 않다. 비판적이다.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실존적 15

신학의 실존적 기능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관련하여 외스트의 학문에 대한 견해는 주목할 만 하다. “학문”은 “자기 자신으로부터는 완결될 수 없는 기능인 것 같다. 어떤 학문도 자기 자신의 분야 안에서 완결될 수 없고 계속 질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 넓은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학문을 수행하는 가운데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위해 인간의 의미에 관해 질문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또한 자기 자신으로부터는 대답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실존적 16

학문은 자연스럽게 학문 이상, 인간 이상의 존재에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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