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단상

바위 앞의 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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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담배를 많이 피우는 오랜 히피 친구가 한 명 있다. 그는 언제나 내 성미를 건드려 논쟁을 유발하려 애쓰는데, 특히 젊고 순진한 크리스천들이 나를 방문할 때는 정도가 심해진다. (한가지 문제는 그가 다른 누구보다 성경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날, 그가 말했다.

“예수님은 창녀와 이야기한 적이 없어!”

“오호, 정말 그래?”

나는 즉각 반론을 제기하면서 성령의 검을 휘둘러 박살을 낼 준비를 했다. 그러자 친구가 내 눈을 조용히 응시하며 말했다.

“들어봐! 예수님이 창녀와 이야기한 적이 없는 이유는 창녀를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야.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자녀들을 만났고 그들을 미친 듯이 사랑하셨어.”

나는 그날 밤 논쟁에서 지고 말았다.

쉐인 클레어본 <믿음은 행동이 증명한다> 283-284

18일 오전 11시. 감리교 본부 앞에 때 아닌 ‘복면부대’가 나타났다. 다들 희멀건 가면을 쓰고 나타났는데, 그 이유는 성소수자를 위해서라고 했다. 흉물스럽도록 거대한 교단 건물. 그리고 그 아래 모인 조촐한 사람들. 바위 앞의 계란이었다.

사건은 지난 해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한 감리회는 “동성애에 찬성하거나 지지하는 교단 목회자는 정직, 면직, 또는 출교에 처한다”는 공포를 내렸다. 이에 반대하는 목사, 전도사, 성도들이 성명을 내고 이 날 길거리로 나선 것이다.

지금 교계의 분위기를 보면, 대부분 감리교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그러니 가면을 쓰고라도 나서야겠다고 생각한 것 아닐까.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던 어떤 이들. 참 대단한 용기라고밖에 할 수 없겠다.

아직까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이 이상하고도 집요한 한국 개신교의 동성애 혐오증이다. 얼마전까지 개신교의 원수 마귀 1위였던 신천지가 드디어 독주를 멈추고, 동성애자와 무슬림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었달까. 도대체 왜 (주류) 개신교는 동성애자를 증오하는 것일까. 못 잡아먹어 안달일까.

목사가 거짓을 남발해도 되고, 논문을 표절해도 되고, 성도를 추행해도 되고, 흉기를 소지해도 되고, 수백억의 비자금을 조성해도 ‘되지만’, 그래도 동성애‘만큼은’ 안 된다는 저의가 궁금하다. 그들의 분류에서는 동성애가 보다 더 큰 죄인 걸까? 아니면 모든 죄가 다 용인 되었으니 이마저도 양보해서는 안 되겠다는 양심어린 절치부심(切齒腐心)의 각오인 걸까?

우리는 이것이 죄다 아니다를 말하기 전에 사람을 사람이 아닌 어떤 혐오스런 ‘것’으로 취급하는 짓거리를 먼저 멈추어야 한다. 죄인 조차도 죄‘인’이다. 이것을 잊고 사람을 죄‘물(物)’로 취급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내가 옳으니 타인은 그렇게 대해도 된다는 것이야말로 예수가 가장 혐오하는 일이요, 일평생 싸웠던 짓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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