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일상

새해 계획 따위

“가을에는 글이 마렵다.”

지난 해 가을, 호기롭게 썼던 한 문장이다. 단단히도 각오를 여매었는데. 이렇게 살자는 둥, 저렇게 쓰자는 둥 말은 참 많이 했는데. 지금보니 그 때 싸질러놓은 문장만큼이나 그 결과 또한 열없이 초라하기만 하다. 무수히 많은 핑계거리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온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내어봤자 그 끝은 자조 섞인 한숨 뿐. 그래, 말 그대로 핑계일뿐이다.

그래서 새해 계획 따위 없다. 아니, 애초에 새해를 새해로써 맞이하지 못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이야기일테다. 똑같은 하루, 달력만 바뀐다고 새해가 될 수 있는가. 뻔한 송년 행사에 그보다 더 뻔한 연말 성찰들, 그리고 내 근무 여건을 두고 씨름하다보니 어느덧 새해라는 게 왔을 따름이다. 진 빠진 나만큼이나 김이 빠져버린 병신년. 그 무엇도 새롭지가 않다.

돌아보면 매해 ‘어떻게 살겠노라’고 다짐은 하지만, 정작 단 한 번도 그렇게 살아본 기억이 없다. 내가 게으른 탓도 있겠으나 사실 인생이란 게 어디 마음대로 되던가. 그랬다면 지금 난 누구처럼 돈 잘 버는 종교인이 되어 있거나, 아니면 누구처럼 고단한 성(聖)인으로 살아가고 있겠지. 그러니 지키지 못할, 실현되지도 않을 새해 계획 따위 내겐 ‘무의미’다.

올해는 ‘그냥’ 살기로 한다. 그냥 먹고, 그냥 자고, 그냥 싸고, 그냥 쓰고, 그냥 공부하고, 그냥 만나고, 그냥 놀기로 한다. 거창한 계획이나 다짐 같은 거 너저분하게 떠벌리지 않고, 그래서 훗날 핑계대야 할 일들 많이 만들지 않고, 그저 그냥 한 해를 보내기로 한다. 아무 계획이 없이도 겨울은 가고, 봄이 온다. 우리네 인생살이 또한 그리 지고 피는 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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