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단상

지껄이자 쉼 없이 지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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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 삶을 결심하지 못하더라도, 보통의 삶이어도 공정한 사회를 위한 ‘언’(言)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행’(行)이 잘못되었다고 ‘언’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거다. 오히려 그럴수록 바른 ‘언’을 거듭해야 행동이 따라올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아니겠나.

사회학자 오찬호(복음과 상황 인터뷰 중)

 

교회에서 옳은 일(적어도 상식선에서)에 관해 이야기할 때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교회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서 짝으로 따라오는 말이 “세상에 구리지 않은 놈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즉, 너도 문제인데 무슨 말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닥치고 가만 있으라는 것이다. 싫으면 떠나라는 것이다.

사실 그렇다. 나는 내가 말하는 대로 살 수가 없다.

권정생처럼 평화를 위해 자동차를 버릴 수가 없다. 전태일처럼 이웃을 위해 내 몸을 불사를 용기도 없다. 김수환처럼 일용할 양식만으로 배부를 자신도 없다. 그렇다고 불의에 농성하는 이들처럼 단식할 마음은 더더욱 없다. 말만 하고 그렇게 할 자신은 없다. 그 수많은 지껄임의 한계를 온 몸으로 느끼는 어느 밤에는, 내가 너무나 작아보여 가슴이 미어진다.

그러나 사회학자 오찬호는 말한다. 그렇게 지껄여도 괜찮다고. 만일 그것이 옳은 것이고, 이 왜곡된 세상에 필요한 일을 말하는 것이라면 더 지껄이라고. 그렇게 누군가에게 옳은 것을 말하고, 또 그것을 자신에게 실컷 들려주라고. 그래도 된다고. 할 수 없다면 말이라도 하라고.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진다고. 그러니 말하자. 지껄이자. 쉼 없이 지껄이자.

 

  “바른 언을 거듭해야 행동이 따라올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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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eply »

  1. 옳다. 침묵이 기체라면, 언설은 액체일테고, 행동은 고체일테다. 비중이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그러니 비겁한 침묵들은 언설들을 향해 지루한 핑계나 질투어린 비난을 멈추고 끝까지 침묵하라.
    그렇다면 일관성은 있다고 인정은 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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