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구원]

[기묘한 신학]기독학부모의 고민…유아세례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일까?!(페친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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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통합 전도사A : 이 아이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부모의 신앙고백 정도로 생각함.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잘 키워보겠다는 서원과 같은 의미로…

20대 청년A : 자유의지가 있기 전에는 자유의지를 침해했다고 하기도 어려워보여요. 부모의 신앙고백과 자녀축복 정도 아닐까요? ㅎㅎ

예장통합 전도사B : 유아의 종교의 자유는 말하기 어려운 것 같아. 세상의 모든 자녀들은 우선 부모의 양육 안에서 자라게 되는데, 그 과정 속 부모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유는 아니기 때문이야. 먹는 것, 입는 것, 말하는 것, 생각하는 방식 등 모든 영역에서 영향을 깊이 받고 시작하는 것이 인간 성장의 당연한 순서이지. 그게 좋든 나쁘든 간에 말이야.

만약 누군가 아이는 섭식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해하기 어렵겠지. 일정 기간은 부모가 먹여주는 대로 먹을 수 밖에 없잖아. 다만 질 좋은 음식을 먹이시라고 충고나 도움은 줄 수 있겠지.

종교의 문제도 마찬가지 같아. 되도록 좋은 종교를 아이에게 전해주십시오라고 말할 밖에. “당신의 사상과 신념을 아이에게 전달하지 마십시오.”라는 건 순진한 생각같아. 그런게 가능할리가.

20대 청년B : 아무튼 유아세례와 종교의 자유는 충돌하는 것 같아요. 세례에 대한 의미 부여가 관건인데, 이 의미부여가 종교적인 신념안에서 부여되는 것일테죠. 그래서 부모는 선택의 자유를 허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독교를 구체적으로 선택해주고 그 이후로도 기독교의 내용만을 맛보게 하므로, 결론적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장통합 전도사C : 부모와 자녀의 입장차이가 분명히 생기는 것 같아. 부모의 입장에서는 좋은 의도에서 축복을 해주는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자녀의 입장에서는 아닌 것 같아. 이성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부모의 입장에서는 도리를 다하는 것이지만 자녀의 입장에서는 여하튼간 침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옳은 것 같아.

20대 청년C : 여러가지 좋은 의도들이 있겠지만 자녀의 입장에서는 침해로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결론

전도사들은 다양한 의미로 유아세례를 이해하고 있음. 자유의 의미가 중요하다고 교육받은 청년들은 유아세례가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통 생각하기 쉬워보임. 목사님들의 개인적 의견들을 받기는 어렵지만,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온도차이가 개인적으로 보기에 작지 않아보임.

부모의 신념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사안으로, 세례의 의미를 무겁게 둘수록 아이의 주체적 선택의 시기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신앙의 의미에 있어서도, 교육적으로도 좋겠음. 부모의 서원이자 축복으로 여긴다면, 공동체적 약속으로 여긴다면, 자유와는 다른차원의 문제가 되므로 유아세례를 해주어도 무방해보임.

과거 유아세례 논쟁에 관해 조사해서 정리해볼 예정. 끝.

칼 바르트 : 세례는 성례전(혹은 성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와 그의 부활 그리고 성령의 은사라는 단 하나의 성례전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따라서 유아 세례는 철폐되어야 한다. 유아에게는 신앙의 응답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 김균진, 『현대신학사상』, 38
 

참고

칼빈의 세례 이해

통합측 목회자 ‘숑숑숑(필명)’ 블로그 ‘유아세례에 관련하여’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교회법 (2003년 7월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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