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약

[서평_2] 신발 신은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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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 1:2 (개역한글)

국민학교 시절, 나는 상상력이 참 풍부한 아이였다. 학교 대표로 뽑혀 ‘상상화 그리기 대회’에도 나간 적이 있으니, 어느 정도는 공인된 사실이라 믿어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내가 한동안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의 상(狀), 다시 말해서 내가 상상한 하나님의 모습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신발 신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나는 이 한 구절을 읽고서 하나님이 신을 신고 다니는 줄만 알았다. 참 순진하기도 하지. 마치 날개 달린 샌들을 신고 다니던 올림포스 헤르메스처럼, 하나님도 멋진 신을 신고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수염난 영감쟁이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신(개역한글)이라는 게 ‘영(개역개정)’일 줄이야. 나는 말 그대로 ‘신발’인 줄만 알았다. 그리고 그런 ‘해석’을 바탕으로 신발 신고 공중부양을 하는 하나님을 알고, 또 믿었다. 이런 신발. 지금이야 열없던 실수라며 피식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이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성경은 고전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영감을 얻어 인생을 살았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빈민을 구제하며 사람들을 돌보았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전쟁을 조장하며 수백만을 학살했다. 과연 이 차이는 어디서 발생하는가? 바로 해석, 같은 본문을 읽고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천양지차인 것이다.

미국의 목회자이자 신학자인 에릭 J. 바저허프는 자신의 책 <가장 잘못 사용된 성경구절>을 통해 이 해석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지금껏 많은 이들에게 오남용 되어 온 성경구절들을 살펴 본래의 의도에 맞게 해석하고, 그 행간에 버젓이 쌓여있는 오류의 퇴적물들을 말끔히 털어내려는 것이다.

바른 질문은 “이 성경 구절이 나에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저자의 원래 의도는 무엇이었으며, 이 말씀을 최초로 들었던 청중은 그것을 원래의 문맥 안에서 어떻게 이해했는가?”가 되어야 한다. (195)

이렇듯 그가 어떤 한 구절을 해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본문의 본래 의도와 배경이다. 선정된 구절만을 따로 떼어서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얼마든지 신발 신은 하나님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복수의 신으로, 전쟁의 신으로, 황금의 신으로도 변모할 수 있다. 따라서 전체 얼개 안에서 그 구절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무엇보다 한 본문을 균형적으로 살펴보는 연습은, 오늘을 사는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매우 필요한 일이다. 제 멋대로 이리 붙였다, 저리 붙였다 하는 자기합리화의 유혹으로부터, 매일 읽고 매일 적용해야 한다는 강박적 성경 착취로부터 벗어나, 보다 건강한 관점으로 성경을 대하고 읽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다만 내용이 다소 진부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가 “6년 넘게” 교회에서 해왔던 설교를 토대로 만든 책이다 보니, 아마도 설교집으로써 독자에게 다가오는 태생적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물론 많은 이들이 고민하고 의문을 갖는 구절들을 잘 추려냈다는 점에서 그의 탁월함이 인정되어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식의 끝맺음은 어쩐지 아쉽다.

더욱이 저자의 말대로 성경이 정말 오류가 없는 ‘완벽한 책’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1,500여 년 동안 약 40명에 달하는 저자들에 의해 기록된 성경은 놀라울 정도로 일관성이 있고 모순이 전혀 없다. 오랜 세월에 걸쳐 성경의 진정성과 완전성을 침해하려는 시도들이 있었지만 성경은 그 모든 시험을 견뎌냈다. 고고학까지도 성경의 역사성과 정확성을 실험과 관찰을 통해 입증해주었다. (16)

성경은 고대 근동에서 발생한 일종의 ‘고문서’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저자에 의해서 수많은 세월 동안 구전, 기록, 수집, 편집, 필사 등의 과정을 거친 결과물인 것이다. 거기에는 내용적 오류도, 논리적 상충도 있을 수밖에 없다. 사실상 그 원본조차 우리에게는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성경에 전혀 모순이 없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분명 성경을 신뢰하는 것과 맹신하는 것은 다르다. 성경은 계시인 동시에 인간의 수단과 방법에 의해 형성된 산물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종종 성경을 하나님의 권위, 전능의 자리에 두고 맹신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성경이 무오(無誤) 해서 하나님이 전능한 게 아니라, 인간의 모든 실수와 주관 속에서도 끊임없이 성경을 통해 자신의 진리를 비추시기에 그 분을 향해 전능하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기독교(특히 개신교)가 성경을 그 중심에 두는 공동체라는 사실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경대로’ 살라고 말은 하면서도, 정작 그 ‘성경대로’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해서는 치열한 탐구와 실천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성경의 오용이 시작되고, 여기저기 신발 신은 하나님이 걸어 다니게 된다.

누군가 성경을 가리켜 ‘위험한 책’이라고 했다. 모르긴 몰라도 그가 성경을 통해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성경을 오용, 남용하는 사람은 성경을 변개시키지만, 성경을 본래 목적에 맞게 바라보는 사람은 그 자신이 변화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경을 대하는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 내가 제대로 성경을 읽고 있는 지 돌아볼 일이다.

가장 잘못 사용된 성경 구절6점
에릭 J. 바저허프 지음, 이옥용 옮김/새물결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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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plies »

  1. 책을 찾기 쉽도록, 글 아래에 링크를 넣었습니다. 별점은 알려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ㅋㅋ
    마음에 안드시다면 지우겠습니다 ㅋㄷㅋ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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