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약

[서평_1] 닥치고 살자

  A: “야, 종교는 다 개뻥이야. 우리는 그저 더러운 물고기에서 다리가 난 거고,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녀석들이 잔뜩 있을 뿐이야.”

B: “신은 당연히 있어.”

A: “그걸 어떻게 증명할 건데.”

B: “임마, 널 누가 낳았다고 생각하냐?”

A: “젠장 무슨 소리야?”

B: “니가 어디서 왔냐구.”

A: “엄마 거시기에서.”

B: “좋아. 엄마는 어디서 왔어?”

A: “할머니 거시기에서. 그러니까 거슬러가면 거시기에서 거시기에서 거시기로… 결국은 맨처음으로 돌아가면… 봐, 모든 건, 모든 사람은 그 엄마의 거시기에서 온 거야.”

B: “그건 어디서 왔냐?”

A: “아마… 아주 크고 거대한 하나의 거시기에서 왔을거야.”

B: “그래, 그게 신이야.”

미국의 드라마 <럭키 루이>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신성모독이라며 펄펄 뛰겠지만,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사실 이 논리는 13세기 기독교 신학을 집대성했던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과 똑닮아 있다. 그가 제시했던 다섯 가지 신 존재 증명 중 하나인 ‘제 1원인 증명’에 의하면, 만물에는 원인이 있고, 그 모든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가장 최초의 능동 원인에 도달하는 데 그게 곧 신이라는 것이다.

“그래, 그게 신이야.”

그게 과연 신일까? 크고 거대한 하나의 거시기. 그것을 과연 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작가는 드라마의 한 장면을 통해 인간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우스운 일인지를 폭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겨우 인간 따위가.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아니, 솔직히 터놓고 말해서 애초에 신이 인간을 만들기는 한 것일까? 어쩌면 인간이 자신의 상상력으로 신을 만든 것은 아닐까?

기독교 저술가 로버트 뱅크스는 자신의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무신론 사용설명서>를 통해 이 질문이 상당히 오래된 것임을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이 물음은 기원전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인류 난제 중의 난제인 것이다. 유대 예언자들을 시작으로, 그리스로마의 철학자들, 중세 기독교 신학자들, 그리고 근대 사상가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신의 존재에 관해 의문을 제시하고 그 존재 여부에 관해 씨름해왔다.

뱅크스는 크리스천답게, 기독교 신앙의 틀에서 이 문제에 나름의 대답을 내놓는다. 먼저 이 시대에 다시금 대두되는 ‘새로운 무신론’(1부)을 설명하고, 무신론의 발생 과정과(2부), 근대의 대표적 무신론 사상가들까지(3부), 그야말로 무신론의 역사와 그 핵심을 총체적으로 파고든다. 특히 그는 무신론의 대표적 사상가들로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신은 소원의 산물이다), 칼 마르크스(신은 압제의 대체물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신은 욕망의 투사이다), 에리히 프롬(신은 인간 가능성의 표상이다) 등을 꼽는데, 그들은 최근 득세하는 새로운 무신론의 기틀을 다진 이들로 무신론의 핵심적인 주장을 가다듬은 사람들이다.

보통 신의 존재 유무를 논하는 책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아무리 읽어도 도대체 신이 존재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다. 어쩌면 이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주제 특성상 논증 자체가 불가하기 때문이다. 신에 관한 논의는 ‘사실’(fact)의 문제라기보단 ‘신념’(faith)의 문제다. 이러쿵저렁쿵 해도 ‘있다는 놈’과 ‘없다는 놈’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지점 따위란 없는 것이다. 다만 ‘설명서’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원제는 설명서가 아니지만), 무신론자들의 생각이 어떠한 지를 알아보는 기회는 될 수 있겠다.

사실 이 책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신앙인에게 자기 성찰의 기회를 마련해준다는데 있다(4부). 오늘날 많은 무신론자들이 득세하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종교인들의 비종교적 행태 때문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만 보아도 1/3 이상이 종교인들의 편협한 행태를 꼬집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저자도 말한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말뿐인 것 이상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신자들의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삶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실재가 설득력 있게 나타나기’ 때문이다.”(190)

그렇다.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보여주는 수밖에는 다른 수가 없다. 그러니 그냥 닥치고 살자. 굳이 ‘논증’하지 않아도 보면 믿어지도록, 그렇게 살아보자. 뻔한 결론.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나면 또 다시 의문이 제기된다.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신의 뜻에 부합한 삶이냐?” 아, 나도 몰라. 그렇다고 너는 아냐? 도무지 질문이 끝날 줄을 모른다. 우리의 인생이란 대개 질문보다 짧고, 해답보다 문제투성 아니던가. 그저 앞날이 막막할 뿐이다.

*책정보

<그리스도인을 위한 무신론 사용설명서> 로버트 뱅크스 (새물결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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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replies »

  1. 내가 신을 보여주마.

    머릿속에서 신을 그려보아라.
    거기에서 너의 소원을 빼라.
    거기에서 정신승리법을 빼라.
    거기에서 너의 욕망을 빼고,
    거기에서 모든 가능성을 빼라.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면, 다시 경전을 들춰보라.
    무엇인가 남았다면, 무릎을 꿇어라.
    그분이 바로 신이다.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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