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단상

우리는 매일 그곳을 꿈꾼다

비압구정동에 사는 서울 사람들 대부분은 하룻밤 자고 일어날 때마다 30센티미터씩 압구정동으로 다가가는 꿈을 꾸고 있다. 아닌 척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그런 꿈을 꾸게 하는 것이 이 땅 경제의 메커니즘이다. 자신 있게 부인할 수 있는 사람 앞으로 나울 것.

이순원
김응교에서 재인용

최근 내가 사는 동네에 건물들이 우후죽순 들어선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부터 시작해서 상가, 빌라, 원룸 등 저마다 콘크리트로 착실하게 철옹성을 쌓아 올린다. 그 덕에 집 앞에는 공인중개사가 일여덟개는 더 들어섰고, 덩달아 주변 상권도 널을 뛴다.

그동안 공사장에서 불어오는 흙 먼지를 견뎌오며 해뜰날을 기대했는데, 아마도 다음번 계약 때는 이 집에서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상권에 덩달아 집세도 펄쩍 튀어오를테니. 특별한 애착 같은 것은 없지만, 자꾸만 변두리로 변두리로 밀려나는 것 같아 입이 쓰다.

소설가 이순원은 그의 저작 에서 압구정을 “이 땅 경제 메커니즘의 상징이자 자본주의의 메카”로 그려낸다. 그곳은 아이가 백만원짜리 수표를 들고 심부름가는 세상이요, 이 사회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의 욕망이 소용돌이치는 세상이다.

그러나 오늘. 작가는 압구정에 터를 두고 사는 사람만큼이나 압구정에 가지 못해 좌절하는 슬픈 인생들을 불러세운다. 비록 현실에선 30센티미터씩 압구정에서 멀어질지라도, 마음만큼은 그곳으로 향하는 이들. 그들을 어찌 너와 내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좁은 땅에 좋은 것을 죄다 모아놨으니 그럴만도 하리라 생각한다. 드넓은 지방을 제쳐두고 굳이 이 좁은 곳을 택했으니 어느 정도 내 탓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끝내는 그 압구정이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이라면, 그래서 일찌감치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그런 곳이라면. 나는 좀 더 자유롭고 싶다. 그 눈물나도록 기다란 행렬에서, 나라도 좀 자유롭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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